[하재식] 언론 위한 시민단체가 필요한 시대...미 RFA의 사례
[하재식] 언론 위한 시민단체가 필요한 시대...미 RFA의 사례
  • 하재식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 승인 2018.05.03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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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식의 미디어 빅뱅]미국 지역언론 지키기 운동
시민단체 만들어 자원봉사 저널리스트 1천명 파견

[편집자 주]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전면화로 인해 지난 100년 동안 익숙했던 미디어 환경이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 사업자와 넷플릭스, 아마존 등 신규 콘텐트 사업자들이 수 억명의 회원을 거느리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이 와중에 기성 신문, 방송, 매거진 사업자는 생존과 나락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다. 미디어 산업은 본질적으로 오락과 여가적 속성이 강하지만,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언론산업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미디어혁명이 세상 어느 한 곳 영향을 미치지 않는 데가 없는 이유다. 이와 같은 미디어빅뱅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있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하재식 교수가 스마트경제에 미디어산업 현장 칼럼을 연재한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퓰리처상 수상에, 석탄전문기자도 있던

1백년 지역신문 가제트도 파산신청

지난 2월, 미국의 한 지방신문이 뉴욕타임스의 미디어 섹션 주인공으로 전면 등장했다. 웨스트버지니아주에 위치한 인구 5만 명 규모의 작은 도시 ‘찰스톤’. 이곳의 유일한 조간신문이던 ‘찰스톤 가제트-메일’이 파산 신청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탄광산업이 주민들의 주요 생업이었던 도시에서 이 신문은 심층 취재와 탄탄한 보도를 밑거름으로 1백년 넘게 지역 여론을 이끌던 대표 언론이었다. 지난 1월, 이 신문에서 최고의 석탄산업 전문 기자로 칭송받던 폴 나이드 기자가 타계하자 주 상원의원은 “그의 노고 덕분에 주의 석탄 노동자들은 더욱 안전할 수 있었고, 우리의 공동체는 더욱 건강할 수 있었다”고 기자를 추도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마약성 진통제의 중독 문제를 탐사 보도로 널리 알린 에릭 아이어 기자가 언론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오랜 역사, 탄탄한 지역 기반, 눈부신 성과를 자랑하던 신문의 파산 신청은 디지털 혁명의 확산으로 인한 신문산업의 위기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더불어, 진지한 화두 하나를 우리에게 던져줬다. 지역을 하나로 모아내고, 감시견 역할을 톡톡히 했던 언론이 무너지고 있는데, 그 공동체는 과연 예전의 건강하고 활력 있던 모습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을까?

 

지방언론과 저널리즘 부활 위한 시민단체 창설

단체명은 '미국을 위한 보도(RFA)' 

이와 관련, 지방언론과 저널리즘의 부활 운동을 벌이는 비영리 단체가 화제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직후 출범한 ‘미국을 위한 보도(Report for America, RFA)’가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 공익 저널리즘을 실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단체는, 봉사 정신이 투철한 저널리스트들을 미 전역의 지역 언론사로 파견하고 있는 중이다.

실제, 단체의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올려져 있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다. 우리는 새로운 세대의 저널리스트들이 미국의 지역 뉴스기관에 진출해 봉사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지금이야말로 바로 ‘미국을 위한 보도’를 시작할 때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직후 미국 사회봉사단체 ‘아메리코 (AmeriCorps)를 모델로 만들어진 이 단체의 사업방식은 간단하다. 심사과정을 거쳐 저널리스트들을 선발한 뒤 수익성 악화와 인력 부족으로 위기에 처한 지방 언론사에 저널리스트를 파견한다. 최근 740명의 저널리스트 지원자 중 9명을 뽑아 6월까지 실전 배치키로 했다. 1년 근무 계획으로 보내지만 성과가 좋으면 계약이 연장된다. 비용의 절반은 RFA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해당 언론사의 재정과 기부금 등으로 충당한다.

이번 프로그램에 따라 최근 웨스트버지니아주의 공영라디오방송국에 파견된 여기자 몰리 본(29)은 현재 인구가 고작 3천명인 작은 도시 ‘윌리엄슨’에 살고 있다. 지난 6년간 피츠버그 포스트-가제트 신문에서 일한 그는 “내가 태어났고,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많은 것을 베풀어 준 지역사회를 위해 보답하고 싶었다”며 “저널리즘이 바로, 내가 그것을 실천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웨스트버지니아주 남부의 탄광 지역을 취재하고 있다.

이 단체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 고문으로 일했고, 신앙 관련 사이트 ‘빌리프넷’을 운영했던 스트븐 왈드만과 보스턴 글로브 신문에서 예루살렘 주재 특파원으로 일하는 등 세계를 무대로 종군기자로 활약한 찰스 센노트가 공동 설립했다. 왈드만은 “사람들이 평화봉사단(Peace Corps)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젊은 저널리스트들이 이 프로그램에 지원하고 있다. 그들은 지역을 살리고, 민주주의를 구원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센노트는 “나는 평생 분열되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아 힘들어 하는 나라들을 취재해 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가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고 느꼈다”며 단체를 설립하게 배경을 밝혔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RFA, 젊은 저널리스트를 자원봉사자로 지방신문에 파견

2022년까지 미국 전역에 1천명 투입 프로젝트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RFA는 2022년까지 미 전역에 1천명의 저널리스트를 투입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역 언론의 광고 중심 수익 기반을 사실상 무너뜨린 구글과 페이스북에 지원을 요청했다. 구글은 이미 재정 지원을 약속했고, 페이스북은 아직 확답을 주지 않은 상태다. 왈든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마크 저커버그는 그의 소파 방석에 쏟아지는 현금 다발로 저널리즘을 회생시킬 수 있다”며 “우리가 당면한 저널리즘의 위기는 디지털시대의 승자들, 즉 구글, 페이스북 등 인터넷 기업들의 지원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이미 언론단체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저널리스트 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이번 프로그램이 향후 위기에 처한 지역 언론과 저널리즘을 복원할 수 있을지가 언론인들 사이에선 큰 관심거리이다. 실제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켄터키주의 지역 신문 ‘렉싱턴 헤럴드 리더’에 배치된 윌 라이트 기자의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지역의 모임에 참석하고, 며칠간 물이 공급되지 않았던 마을의 주민들과 직접 대화함으로써 상수도 문제에 대한 대형 특종을 보도할 수 있었다. 이 보도 후에 담당 공무원이 강제 퇴직되었고, 주정부가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백40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단체의 창립자 왈덴은 “우리가 이런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20년 경력의 베테랑 기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며 “현재 지역 언론의 현장이 너무 심각한 상황이라 단지 기자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 효과는 가히 엄청나다”고 지적했다.

 

"평화봉사단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이유"

구글 재정지원 약속, 페이스북 검토 중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1990년에 일간지, 주간지를 합해 미국 신문산업에 45만5천명이 종사했다. 하지만 2016년 1월 기준으로 이 숫자는 17만3천명으로 급감했다. 고용감소보다 더 큰 문제는 지역과 미디어의 연대감이 약화된 점이다. 전통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지역 언론들은 공동체의 문제를 토론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공론의 장’이었다. 그러나 지역 언론이 쇠락하면서 그 기능이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다. 지방 정부나 정치인들을 감시하는 언론의 견제 기능도 상당 부분 약화됐다. 편집국이 크게 축소돼 심층 취재는 더욱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지역민을 직접 만나 취재하는 기자들이 사리지면서 가짜 정보가 활개를 치고, 이로 인해 민주주의 또한 크게 위협받는 상태에 놓여 있다.

RFA의 도전은 아직은 실험 단계다. 그러나, 편집국(뉴스룸)이 점점 더 빈 책상으로 가득차는 시대, 그래서 뉴스가 애타게 저널리스트를 기다려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와 저널리즘을 구해내겠다는 이 단체의 목표는 숭고하고, 절실하다. 고령화와 디지털 혁명이 맞물리면서 지역 언론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RFA의 ‘지역 언론 구하기’ 프로젝트를 딴 나라 이야기로 치부해선 안되는 이유다.

하재식 일리노이주립대 교수(angelha7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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