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식]위기의 美종이신문…反트럼프 정서 타고 부활하나?
[하재식]위기의 美종이신문…反트럼프 정서 타고 부활하나?
  • 하재식 교수
  • 승인 2018.09.10 11: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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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식의 미디어빅뱅] 反트럼프 정서에 살아나는 종이신문
"독자를 주주로 모신다": 미국 신문의 자구책
독자들, 트럼프 맞서 "민주주의 구하겠다"
사진=백악관
사진=백악관

 

트럼프를 궁지로 몰아넣은 종이신문

최근 사양 사업으로 치부되던 종이신문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의 양대 신문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얘기다. 우선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전설적인 저널리스트인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의 책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 (Fear: Trump in the White House)'의 9월 10일 공식 발간에 앞서, 일부 내용이 지난 4일 공개됐다. 우드워드는 책에서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트럼프에 대해 험담한 내용들을 가감 없이 소개했다. "백악관은 미친 동네(crazytown)", "트럼프는 5, 6학년 학생", "트럼프는 멍청이 (Idiot)" 등이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트럼프가 자격 미달의 지도자라는 것이다.

하루 만에 또 다른 결정타가 뉴욕타임스에서 터졌다. 스스로를 행정부의 고위관료라고 밝힌 익명의 기고자가 쓴 칼럼에서 "나는 행정부 내 저항세력의 일부"라며 "트럼프의 일부 아젠더와 극단적 편향을 좌절시키고자 맹세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수정헌법 25조를 거론하며 행정부 내에서 트럼프를 쫓아내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헌정 중단을 막기 위해 이를 포기했다는 일화까지 소개했다. 웹사이트에 실린 칼럼에는 이틀 만에 1만5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후 백악관은 분노의 도가니가 됐다. 트럼프는 "반역인가?"라고 트위터를 날린 데 이어 뉴욕타임스를 "망해가는 신문사"라고 비난했다. 이어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을 이유로 법무부에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정부 내에선 기고자 색출 작전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미국 저널리즘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와 미국 유력 언론의 싸움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지난 7월 트럼프가 "언론은 국민의 적"이라고 공격한 후, 미국 언론인들은 자부심에 심각한 훼손을 받았다는 입장이다. 언론의 자유가 최우선의 가치인 나라에서 지도자가 절대 해선 안 될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급기야 보스턴 글로브, 뉴욕타임스 등 약 350개의 미국 신문사들은 지난 8월 16일 공동으로 트럼프의 적대적 언론 태도를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다.

 

反트럼프 정서가 종이신문을 부활시키고 있다

과연 디지털 혁명의 확산으로 폐업과 감원을 거듭해야 했던 미국 종이신문들이 부활의 날개를 펼 수 있을까? 유력 전국지들은 명성을 이어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실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페이월 (Paywall, 웹사이트에서 유료 구독자에게만 전체 기사를 보게 하는 방식)'에 힘입어 구독자가 꾸준한 상승세에 있다. 이들 신문이 제공하는 양질의 정보를 독자들이 '여전히'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지명도가 떨어지는 지역신문들은 폐업과 감원이 속출하는 등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등 대형 기술기업들이 광고시장을 독점하고, 구독자가 급감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언론을 가짜뉴스의 출처로 비난하는 트럼프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국민적 정서가 종이신문들에 힘이 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8월 비즈니스 섹션에서 한 지역신문의 사례를 소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쪽에 위치한 소노마 카운티에서 일간지 'Healdsburg Tribune'과 3개의 주간지를 발행하는 롤리 앳킨슨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공짜 뉴스가 쏟아지면서 최근 몇 년간 파산 위기에 몰렸다.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로는 생존이 어렵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돈 많은 투자자를 구해 사업을 살려볼 궁리를 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자 투자은행을 통하지 않고 직접 대중에 주식이나 채권을 파는 이른바 'D.P.O (Direct Public Offering)' 방식에 눈을 돌렸다. 독자들에게 주식을 판 대가로 1백만 달러를 유치한 온라인 뉴스 사이트 '버클리사이드'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9천9백 명의 유료독자를 갖고 있는 롤리의 회사 '소노마 웨스트 컴파니'는 회사 주식을 지난 3월부터 독자에게 팔기 시작했다. 40만 달러를 목표로 하는 그는 최근까지 10만 달러어치를 팔았다. 저녁 식사 모임, 칵테일 파티 등 독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주식 세일즈를 했고, 웹사이트에는 회사의 재정 상황을 설명하는 문서를 올려놓았다.

 

줄 잇는 독자들 투자…"미국 민주주의 구하고 싶다"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원군은 다름 아닌 트럼프 당선 이후 확 달라진 정치 환경이었다. 지역이 전통적으로 진보적인 민주당의 텃밭인 덕도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뉴스미디어를 공격하면서 신문 독자들 사이에 시국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많은 독자들이 "지역 신문을 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 민주주의를 구하고 싶다"는 이유를 들어 주주로 나섰다. 이는 전통적으로 지역신문들이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공론장 역할을 해온 미국 역사와 무관치 않다. 한 투자자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역신문을 보물처럼 여기고 있다. 나는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의 열쇠라고 믿으면서 자랐다"고 주주로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5천 달러를 투자한 한 퇴직자는 "난 하루에도 수차례 뉴욕타임스의 애플리케이션에서 속보 '알림' 서비스를 받는다"며 "그때마다 속으로 '악명 높은 트럼프가 오늘은 무슨 일을 저질렀지?'라는 두려움 속에서 스마트폰을 연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신문들은 소설미디어가 전해주지 않는 뉴스를 발굴하는 저널리스트를 키워왔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퇴직 기자는 "난 매일 이 나라의 저널리즘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슬퍼하고 있다"며 "나를 대변해 줄 '입 (Mouth)'이 있는 곳에 돈을 투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국 포인터연구소의 한 분석가는 "내가 아는 한 롤리가 독자들에게 회사 주식을 판 첫 지역신문 발행업자"라며 "우리는 신문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등장하는 역사의 변곡점에 와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에 대한 위기의식에 트이는 종이신문 숨통

롤리는 들어온 투자금으로 편집국에 있는 기자 8명의 임금을 올려줄 계획이다. 그는 현재 시간당 15 달러를 주고 있다. 이는 캘리포니아주가 몇 년 내 이루겠다는 최저임금 목표치다. 롤리는 "15달러의 시간당 임금은, 내가 인색해서가 아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라며 회사 경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과연 롤리와 그의 회사가 독자를 주주로 전환시키는 실험에 끌까지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만만치 않은 일이다. 소셜 미디어 환경뿐 아니라 종이신문을 외면하는 젊은 층이 그의 앞에 놓인 난적이다. 하지만, 저널리즘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트럼프와 이에 대한 독자들의 위기의식이 종이신문들에 숨통이 되는 점만은 분명하다.

'저널리즘의 위기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신문 독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절박해 보이는 게 요즘의 미국 세태다. 

하재식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angelha7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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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배 2018-09-10 14:29:57
트럼프가 북핵 문제도 해결하고...언론도 위기에서 구하는 건가 ㅋ.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