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식] 가짜뉴스發 디지털 전쟁터 된 미국…한국은 예외일까? - 스마트경제
[하재식] 가짜뉴스發 디지털 전쟁터 된 미국…한국은 예외일까?
[하재식] 가짜뉴스發 디지털 전쟁터 된 미국…한국은 예외일까?
  • 하재식
  • 승인 2018.10.1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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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식의 미디어빅뱅] 롤러코스터 탄 미국 연방대법관 인준 스토리
최악의 국론분열에 미디어 책임론 확산 
가짜 뉴스 發 디지털 전쟁터 된 미국…한국도 예외 아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SNS는 내가 싫어하는 정당에 '좋아요'를 누른 친구를 고발한다

페이스북(페북)에서 친구로 지내던 지인이 당신의 정치 성향과 다른 글을 올리거나, 당신이 싫어하는 정치인 혹은 정당을 옹호하는 글에 '좋아요'를 클릭했을 때 어떤 기분을 느꼈는가. 그 친구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고 앞으론 정치적 논쟁은 피하겠다고 다짐하지는 않았는가. 혹시 친구 관계를 끊어야 할까 고민하지 않았는가. 소셜미디어는 친구가 어딜 다녀왔고, 무얼 먹었는지 뿐만 아니라 그 친구의 정치적 성향까지 속속들이 알려준다. 이로 인해 소셜네트워크(SNS)가 사람들 간의 미움과 적대감을 증폭시키는 이념 전쟁의 무기로 전락하고 있다.

그야말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을 하나로 묶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소셜미디어가 분열의 진앙지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국경을 초월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요즘 미국에선 2016년 대통령 선거 이후 최악의 국론 분열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서 벌어진 최악의 국론분열…진앙지는 SNS

발단은 지난 7월 앤서니 케네디(82) 대법관의 갑작스런 사퇴 발표였다. 앤서니 케네디는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아 온 인물이다. 그가 종신직인 대법관 자리를 내려놓자 공화당 소속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반색했다. 케네디의 사표 후 보수, 진보 각각 4명의 연방 대법관 구도를 갖게 되는 연방대법원에 본인이 지명한 보수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최종 인준될 경우 길게는 수십년 간 보수 우위 구도가 굳어질 수 있다. 실제, 트럼프는 보수 성향의 브렛 캐버노(53)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지명했다.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캐버노 판사가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백악관에서 비서관으로 일했고,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케네스 스타 특검팀에서 클린턴의 성(性) 스캔들을 파헤치는 데 적극 참여한 이력을 들어 그의 '정치적 편향성'을 공격했다. 

특히 캐버노가 동성애, 낙태 등의 사안들에서 보수 기독교계를 대변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대법관 임명'은 가히 진보와 보수 세력 간의 이념 전쟁으로 비화됐다. 초기엔 미국 상원의 의석 분포가 공화당 51, 민주당 49명이어서 본회의 통과가 확실시되는 싱거운 게임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지뢰는 의외의 곳에서 터졌다. 상원 인준을 일주일도 남겨놓지 않던 9월 중순, 크리스틴 포드(51) 팰로앨토대학 심리학과 교수의 폭로가 터져 나왔다. "고교 시절이었던 1982년, 친구들과의 파티에서 캐버노가 술에 취한 채 나를 침실로 끌고가 침대에 눕히고 성폭행을 시도했다"며 "소리를 지르자 내 입을 막아 '우발적으로 나를 죽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여성이 예일대 신입생 시절, 캐버노가 술에 취한 채 자신의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성기를 노출했다는 주장했다. 그야말로 '미투 (Me Too)' 운동이 미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좌파 "성폭력 가해자" VS 우파 "국가적 수치"

성폭력의 진실 여부를 가리기 위해 지난 9월 24일, 상원 법사위원회는 당사자들을 청문회에 불렀다. 포드 교수는 청문회에서 "나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가해자가 캐버노인 게  100% 확실하다"고 증언한 반면, 캐버노 판사는 "맥주를 좋아하지만 정신을 잃을 만큼 술을 마시진 않았고, 누구에게도 성폭력을 가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캐버노는 "난 그렇게 살지 않았다"며 항변했지만, 청문회는 그에 대한 자질 논쟁을 낳았다. "나에 대한 인준 청문회 과정은 국가적 수치가 됐다"며 "이 모든 게,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인준을 막으려는 좌파 세력 때문"이라고 분노한 캐버노 판사 본인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이어 "성폭력 논란은 좌파들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를 대신해 나에게 정치적 복수를 감행한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대법관 등극을 앞둔 법조인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상치 못한 강성 발언이었다. 나름대로 보수 세력을 결집시켜 인준을 통과하겠다는 포석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대법관의 성품과 자질을 의심케 해 반대여론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캐버노는 또한 "술을 많이 먹어 정신을 잃은 적이 있는가"라는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들의 질문에 "당신은 그런 적이 없었냐", "당신은 무슨 맥주를 좋아하냐"고 되묻는 등 거친 언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그의 공격적 답변에 "캐버노가 좌파에 대한 적대감을 가감 없이 표출한 청문회"였다고 지적했다. 급기야 미국의 법대 교수 2천4백여 명은 "캐버노 판사의 공정성과 사법적 판단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인준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캐버노를 낙마시킬 결정적 한방이 없었고, 결국 지난 6일 미국 상원은 찬성 50, 반대 48의 표결로 캐버노를 대법관으로 확정했다. 직후 트럼프는 "캐버노는 위대한 대법관이 될 것"이라고 환호한 반면, 예일대 법대 학장을 지낸 로버트 포스트는 한 잡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캐버노는 향후 대법원에서 당파적 분노의 상징이 될 것이다. 이는 미국의 비극"이라고 우려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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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터지는 박격포…디지털 전쟁터 된 미국

이번 파문은 미국 내에 존재하는 이념적, 정치적 분열이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증폭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미디어는 진보, 보수로 갈라져 이 문제를 놓고 격돌했다. 보수 측은 캐버노가 퓰리처상을 수상한 인기소설 '앵무새 죽이기'에서 백인여성을 강간했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기소된 흑인 '톰 로빈슨'과 같은 처지라고 옹호했다. 진보 측은 "성폭력 의혹의 당사자가 대법관 자리에 있을 순 없다"고 공격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마다 미디어의 편향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도층 인사들과 많은 국민이 소셜미디어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를 퍼 나르고, 때로는 가짜 정보를 확산시켰다. 보수, 진보 양측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서 강하게 결집하고 단결했다. SNS에는 이번 일을 전후로 접속자 수가 급증했고, 포드와 캐버노를 각각 지지하는 해시태그 운동도 벌어졌다. 미디어는 신이 났다. 2천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TV로 청문회를 봤고 실시간으로 온갖 반응들이 온갖 미디어를 통해 전달됐고, 반론과 또 다른 반론이 소셜미디어를 달궜다. 미국 미디어는 2016년 대선 이후 최대의 특수를 만나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국론분열의 정도가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됐다는 목소리가 많다. 혹자는 남북전쟁 이후 최악의 내전 상황이라며 그 진원지로 '미디어'를 손꼽았다.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10월 2일자 칼럼에서 "미국인들이 다른 이념을 가진 이들을 적으로 볼 만큼 뿌리 깊게 분열됐다"며 "젊은 시절 중동의 레바논에서 내전을 취재하면서 언론 생활을 시작했는데, 조국의 내전을 취재하면서 저널리스트 인생을 마무리하게 될지 몰랐다"고 탄식했다. 그는 미디어가 내전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TV에서 서로에게 소리지르고, 페이스북에서 반대편을 친구 목록에서 제외하고, 트위터에서 상대방을 향해 언어의 박격포를 터뜨리고 있다. 모든 사람이 디지털 전쟁터 (Digital Battlefield)에서 살고 있다"

 

유튜브에 넘치는 '자칭 논객'들…가짜 뉴스, 한국은 예외일까?

사실 프리드먼이 언급한 디지털 전쟁은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의 확산으로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2016년 미국 대선을 전후해 전 세계적으로 가짜뉴스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을 통해 퍼지면서 가속화됐다. 사이버 전쟁은 여론이 진실이나 팩트(사실)가 아닌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정서나 이념에 의해 더욱 영향을 받는 현상을 일컫는 '탈진실 (Post-Truth)' 현상을 낳았다. 이념이나 돈벌이를 위해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하고, 가짜 정보를 '사실'처럼 호도하는 도덕적 불감증이 사회 곳곳에서 독버섯처럼 확산됐다. 최근 몇 년간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홍역을 치렀던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21세기 이후, 디지털 미디어가 지구촌 미디어 시장을 장악했다. 많은 사람들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트위터 등 각종 디지털 기업들이 소통과 타협을 통한 글로벌 민주주의를 앞당길 것이라고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개인이 소설미디어를 통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고, 정치 지도자들은 이를 적극 정책에 반영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소셜미디어가 정당, 이념, 종교, 국가 간 대립을 격화시키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독일신문 자이트 (Zeit)는 미국의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 직후 실은 칼럼에서 "미국인들이 TV 시청을 통해 진실게임을 했지만, 결국은 겉치레로 끝이 났다. 결국은 권력과 그 권력을 뺏기지 않겠다는 두려움이 이번 스펙타클의 주된 동기였다"고 일갈했다.

미국의 연방대법관 인준을 둘러싼 소동을 단순히 남의 나라 일로 치부하기에는 한국사회가 직면한 현실 또한 엄중하다. 가짜 정보가 카톡, 포털, 동호회 웹사이트 등을 통해 퍼지면서 증오를 키우고,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뿐만 아니라 정론지를 표방하는 국내 유력언론사의 기사 댓글에도 욕설과 가짜 정보가 넘쳐나고, '논객'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유튜브를 통해 가짜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쏟아 내고 있다. 프리드먼이 탈진실의 시대에 미국에서 발발했다고 언급한 '내전'은 한국에서도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하재식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angelha7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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