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에도 멈추지 않던 연구 열정’...숙명여대, 고 함시현 교수 추모 물결
‘암 투병에도 멈추지 않던 연구 열정’...숙명여대, 고 함시현 교수 추모 물결
  • 복현명
  • 승인 2021.02.15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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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 열역학으로 난치병 치료의 획기적 전기 마련한 단백질 연구의 세계적 전문가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대표 연구자,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 수상 이력
암 투병으로 지난 1월 타계한 지 한달
오는 3월 대한화학회 발행지에 국내 화학 전공 교수들의 추모글 게재되는 등 교내외 추모 물결
숙명여자대학교 화학과에서 전산화학을 가르치다 지난 1월 지병으로 타계한 고 함시현(사진) 교수에 대해 교내외에서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사진=숙명여대.
숙명여자대학교 화학과에서 전산화학을 가르치다 지난 1월 지병으로 타계한 고 함시현(사진) 교수에 대해 교내외에서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사진=숙명여대.

[스마트경제=복현명 기자] #. “시현쌤, 언젠가 농담삼아 제가 크고 멋진 연구소를 지으면 그곳에서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하면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자고 했었죠. 이제는 떠나셨지만 제 마음 속에는 항상 멋있고 열정많은 친구이자 동료, 자매로 남아있을 거에요. 보고 싶습니다.”

숙명여자대학교 화학과에서 전산화학을 가르치다 지난 1월 지병으로 타계한 함시현 교수를 추모하며 같은 학교 동료인 김경아 공예과 교수가 남긴 추모글이다. 장래가 촉망받던 여성 과학자의 안타까운 소식에 교내외에서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함 교수는 1991년 숙명여대 화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미국 텍사스 공과대학에서 이학박사를 취득했다. 고려대 연구교수를 거쳐 2003년 33살의 나이로 모교 화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화학과 학과장, 자연과학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단백질 연구의 세계적인 전문가인 함 교수는 치매, 당뇨, 암 등 각종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단백질의 응집현상을 원자 수준에서 규명해 단백질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슈퍼컴퓨터와 열역학을 융합해 독자적으로 고안한 역동 열역학으로 치매를 유발하는 단백질의 응집 기작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고 단백질과 물의 상호작용을 정확히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등 난치병 치료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연구성과로 2014년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과 2016년 4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하고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의 대표 연구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함 교수는 2014년부터 미주, 유럽, 동남아, 중동 등 15개국을 다니며 콘퍼런스, 대학, 연구소 등에서 90차례 가량 기조강연과 초청강연을 진행했다. 2017년에는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세계적 석학 20명을 초청해 숙명여대에서 삼성 Global Research Symposium을 개최했으며 과학계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Gordon Research Conference(GRC)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세상을 바꿀 과학자’라고 불리는 캐나다고등연구원(CIFAR)의 시니어 펠로우에 한국인 최초로 위촉되기도 했다.

“주위에 가까운 지인을 병으로 잃어본 사람은 알아요. 난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하루도 쉴 수 없어요” 뇌출혈로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난치병 치료를 위한 연구에 매진해 온 함 교수는 지난 25년간 휴가 한번 제대로 간 적이 없었다. 

주말은 물론 연구년에도 매일 연구실에 출근하며 연구과제의 진행사항을 체크하고 국내외 콘퍼런스에 참여했다. 특히 투병 기간에도 진행하는 사업과제를 일일이 챙기고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의 논문지도를 꼼꼼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약 2년간의 암 투병 끝에 지난 1월 16일 향년 53세라는 젊은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함 교수는 평소 모교에 대한 애교심과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국내외 콘퍼런스의 초청강연을 하거나 연구성과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숙명여대와 재학생들의 우수한 역량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학생들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웠다. 해외 대학 여대생들에게는 여성 과학자로서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강조했다.

생전 인터뷰에서 함 교수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건 똑똑한 게 아니에요. 성실이에요. 연구는 마라톤 같아서 어제오늘한다고 결과가 안 나오죠. 저보다 똑똑한 학생들이 많은데 중도포기하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두려움을 버리고 자신감을 가지세요. 여러분은 젊다는 것 만으로도 예쁘니까요.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꿈은 이뤄질 거에요”

홍승우 숙명여대 화학과 학과장은 “바쁜 일정 중에도 제자들과 만나는 학과 행사에는 꼭 참석해 여러 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며 “학생들에게는 단순한 스승을 넘어 일종의 멋진 언니이자 롤모델이었다”고 회고했다.

숙명여대는 함 교수의 업적을 기리는 특별명예연구교수상을 수여하고 화학과 홈페이지에 온라인 추모공간도 마련할 계획이다. 대한화학회 역시 함 교수를 추모하는 글을 모아 오는 3월 대한화학회 발행지에 게재할 방침이다.

 

복현명 기자 hmbok@dailysm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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