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식의 미디어빅뱅] 스트롱 저널리즘으로 디지털 제왕된 뉴욕타임스
[하재식의 미디어빅뱅] 스트롱 저널리즘으로 디지털 제왕된 뉴욕타임스
  • 하재식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 승인 2018.03.12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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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유료화에 이어 TV뉴스 제작 승부수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트럼프가 "망해가는 신문사"라 비난한 뉴욕타임스

며칠 전 시카고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만난 일본의 신문기자가 담당한 표정으로 토로했다. “요즘 일본의 젊은이들이 뉴스를 안본다. 오로지 관심 있는 것은 자신의 주변, 친구, 소설미디어 뿐이다. 공적인 이슈에 관심이 없다”고 전했다. 이어 “신문사들이 문을 닫을 날이 멀지 않았다. 요즘 뉴스를 나이 든 세대 말고 누가 보냐”고 덧붙였다. “너무 비관적인 것 아닌가”라는 말에, “당신은 최근의 미디어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전했다.

종이 신문을 읽으면서 세상을 느끼던 시대가 과연 50년 이후에도 이어질까. 대학 수업 중 “오늘 종이신문을 읽었으면 손을 들어봐라”는 질문에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지금의 초등학생들이 성인이 될 때엔 이런 추세는 더할 것이다. 온라인 뉴스를 공급하는 업체는 잇따르겠지만 종이신문은 슬그머니 자취를 갖출 것이다.

사실 신문 산업의 위기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높은 비용을 대야 유지될 수 있는 신문 발행을 디지털미디어 환경에서 계속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 1990년 이후 미국에서 신문 산업 종사자가 27만명 넘게 줄었다는 통계가 있다. 미국에선 폐업하는 신문사가 속출하고, 적잖은 신문사들이 인터넷만을 통해 뉴스를 공급하고 있다.

가짜뉴스의 범람과 소설미디어의 확산으로 저널리즘의 위기가 화두인 요즘, 앞장서 저널리즘의 건재를 보여주는 언론사가 있다. 미국의 최고의 권위 신문인 뉴욕타임스(NYT)가 그 주인공이다. 이 신문은 영국의 대표 신문 가디언, 경쟁업체 워싱턴포스트, 최근 각광받는 미국의 디지털 신문 버즈피드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온라인 매출을 기록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짜뉴스” 또는 “망해가는 신문사”라고 비난을 해와도 온라인 구독자는 폭발적인 증가세다.

허핑톤+버즈피드+WP 합친 것보다 많은 디지털 매출 기록

이런 가운데 이 신문이 최근에 낸 구인 공고가 이목을 끌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나아가고자 하는 변화의 방향에 대한 속내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고는 다음과 같다. 야심찬 텔레비젼 뉴스 시리즈를 준비 중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성공시킬 수 있는 편집장을 구합니다. 매주 가장 중요한 뉴스를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비전, 뉴스가치 판단 능력, 그리고 뉴스에 대한 본능을 가진 저널리스트를 찾습니다. 편집장은 뉴욕타임스의 저널리스트들과 비주얼 스토리를 화면에 멋지게 구현할 책무를 갖게 됩니다.

뉴욕타임스는 “새로운 TV 뉴스 프로그램은 뉴욕타임스가 표방하는 저널리즘의 범위와 권위가 실감나는 스토리텔링, 혁신적인 시각 효과, 최고 수준의 제작 능력과 결합된 형태가 될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부문 담당자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뉴스 프로그램을 배급하기 위해 ‘스트리밍 (실시간 재생)’ 서비스 회사와 케이블 TV 채널들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프로그램은 우리 신문이 추구하는 비주얼 저널리즘의 가장 멋진 모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부의 유명 제작업체가 이미 프로그램 준비에 나섰고, 시험판도 제작했다. “획기적인 탐사 보도, 현장 취재, 의제 설정 인터뷰, 새로운 포맷 등을 선보이겠다”고 뉴욕타임스 측은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구글, 넷플릭스처럼 자신을 필수품으로 만들려한다

이번 공고는 뉴욕타임스가 세계적 미디어혁명을 어떻게 헤쳐 나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닌, 시청할 수 있도록 고품질의 동영상 뉴스 상품을 내놓겠다는 것. 뉴욕타임스는 2017년 1월 일주일에 다섯 차례 각각 20분짜리의 팟캐스트 ‘더 데일리’를 출범시켜 팟캐스트 뉴스 시장을 평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자들이 직접 출연해 뉴스의 뒷얘기를 전달하고, 생생한 현장을 전해준다. 약 4백만명이 이 프로그램을 청취하고 있다. 팟캐스트에 성공한 뉴욕타임스가 이제 TV 뉴스 부문에 뛰어든 것이다.

사실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전환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NYT에 돈을 주고 뉴스 콘텐트를 얻는 전세계 독자가 무려 3백50만명. 이는 2015년 구독자의 두 배 수준이다. 3백50만명 중에 종이 신문이 아닌, 디지털 기기를 통해서만 뉴스를 받아보는 독자가 2백50만 명이다. 독보적인 성장세다.

뉴욕타임스의 비약을 이끈 비결은 무엇일까. 미국의 기술 전문 잡지 ‘와이어드’는 지난해 “뉴욕타임스는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HBO가 채택했던, 이른바 스스로를 ‘필수품’으로 만드는 전략을 어떻게 펴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그 비결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뉴욕타임스는 자신들이 가진 핵심 상품, 즉 ‘저널리즘’에 중점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예컨대 온라인 서비스를 더욱 확대해 가고 있고, 맞춤형 건강, 쌍방향 뉴스, 가상현실 영화 등 다양한 콘텐트를 제공해 서비스 가입자가 뉴욕타임스의 뉴스 상품을 자신의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느끼게 해주고 있다.”

자신의 핵심 상품인 뉴스에 투자, 또 투자

뉴욕타임스의 계속된 성장세는 다른 곳과 견줄 수 없는 차별화된 뉴스상품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뉴욕타임스는 세계 174개국에 취재진을 파견하고 있다. 보유한 저널리스트가 무려 1천450명. 지구촌 곳곳을 찾아가 현장에서 뉴스를 취재해 저널리즘의 정도를 지켜가고 있고, 이를 통해 미래의 교두보를 확보하고 것이다. 뉴욕타임스 변신의 핵심은 뉴스가 공짜가 아니어도 독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는 좋은 상품이라는 점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는 광고 판매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을 택하지 않았다. 와이어드는 “뉴욕타임스는 뉴스 콘텐트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주로 광고를 팔아 돈을 버는 인터넷업체 허핑턴포스트, 버즈피드, 복스 등과 사뭇 대조적인 전략을 펴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독자들의 유료 디지털 구독이 뉴욕타임스의 대표적 성장엔진이다. 뉴욕타임스의 딘 바켓 전무는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 전세계의 수백만명이 지금 우리가 제공하는 콘텐트를 절실하게 원하고 있다고 본다”며 “우리가 지금 그들을 붙잡을 수 있다면 그들은 돈을 내고 우리 상품을 살 것이고, 멀지 않아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스트롱 저널리즘의 구현만이 살 길이다

사실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개혁은 치열함과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996년 인터넷 신문을 도입했고, 2011년 인터넷을 통한 유료 콘텐트 제공 서비스를 도입했다. 올 1월 아버지 (아서 옥스 설즈버거 주니어)의 발행인 자리를 물려받아 뉴욕타임스를 지휘하게 된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 (37)가 이 디지털 개혁을 이끌어 왔다. 그가 주도해 2014년 내놓은 ‘혁신보고서 (Innovation Report)’는 기폭제였다. 당시 보고서는 “뉴스룸은 역사적으로 변화를 막거나, 그 강도를 약화시키는 등 수동적이었다”며 “뉴스룸은 더 이상 이를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레그 설즈버그 발행인은 “현상 유지는 우리의 선택사항에 없다.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가 문제다”라고 개혁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 보고서는 당초 내부 보고서로 작성됐지만 외부에 유출돼 미국 신문산업 전체에 교본이 됐다는 평가다.

뉴욕타임스는 2015년엔 “향후 우리의 진로”라는 보고서를 통해 “2020년까지 디지털 매출을 두 배 수준인 8억달러까지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레그 설즈버거 발행인은 2017년 1월 ‘독보적 저널리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는 과정에도 적극 참여했다. 당시 보고서는 “우리는 더 이상 클릭수를 높여 작은 이익을 내는 광고에 전력투구하지 않는다. 페이지뷰 경쟁에서 이기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우리에게 최고의 사업 전략은 수백만명의 지구촌 독자가 구매하는 데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을 ‘강한 (Strong)’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더불어 계속해서 독보적인 저널리즘을 보여주기 위해 세 가지 변화, 즉 보도의 변화, 임직원의 변화,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주문했다.

 

사진=뉴욕타임스
사진=뉴욕타임스

2017년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보도가 더욱 시각적 효과를 강화함으로써 ‘눈으로 보는 신문’을 회사의 핵심으로 키우자고 주문했다. 특히 이미지, 활자체, 비디오 등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주간 TV 뉴스 프로그램의 가동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독자들을 보도의 중요한 부분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지난 1월 뉴욕타임스는 사설이 실리는 오피니언면에 뉴욕타임스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하고, 심지어 예찬하는 독자 투고 15편을 실었다. 트럼프 정권을 강력하게 비판해 온 뉴욕타임스가 보수 성향 트럼프 지지자의 글을 핵심 지면에 모신 것이다. 열린 태도와 창의적 발상이 없다면 불가능한 지면 제작이었다.

뉴욕타임스 디지털 대전환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그레그 설즈버그 발행인은 한 인터뷰에서 “난 미디어 산업을 좌우하는 여러 트렌드를 읽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특히 새로운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관계자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 내 역할 중 하나는 트렌드를 제대로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뉴욕타임스가 이끌 디지털 대전환의 세부적인 과정과 종착지는 끊임없이 업계의 이목을 끌 것이다. 이 신문의 행보는 저널리즘의 성공, 신문 산업의 성공을 가늠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2017년 ‘독보적 저널리즘’ 보고서의 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왜 변화해야 하는가? 우리의 야망은 거대하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독창적이고, 시간과 품을 들여야 하고, 현장에서 전문가들이 직접 낚아 올리는 보도를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수익모델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 이 보고서에서 바켓 전무는 지적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미래를 상상하는 데 소심해지는 것. 그것은 세상에서 뒤쳐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혁신보고서 발간 이후  TV뉴스 제작에도 나서

뉴스 미디어와 저널리즘이 불신 받는 시대다. 어느 순간 ‘기자’와 ‘쓰레기’를 합성한 ‘기레기’가 유행어가 됐다. 선정적인 제목으로 클릭수를 높여 광고수익을 올리는 데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는 한국 미디어업계는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승부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뉴욕타임스는 유능한 기자를 확보하고, 내부 교육에 투자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찾는 데 열정을 아까지 않고 있다.

과연 한국의 저널리스트들은 가짜뉴스라는 공격에 맞설 자신감과 열정이 있는가. 한국의 미디어는 저널리즘에 대한 열정을 계속 지켜갈 수 있을까. 한국의 미디어업계는 세기적인 디지털 파도를 넘어 언론의 위기를 돌파할 담대함과 창의성을 갖고 있는가. 뉴욕타임스가 그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편집자 주]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전면화로 인해 지난 100년 동안 익숙했던 미디어 환경이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 사업자와 넷플릭스, 아마존 등 신규 콘텐트 사업자들이 수 억명의 회원을 거느리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이 와중에 기성 신문, 방송, 매거진 사업자는 생존과 나락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다. 미디어 산업은 본질적으로 오락과 여가적 속성이 강하지만,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언론산업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미디어혁명은 세상 어느 한곳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미디어빅뱅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있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하재식 교수가 스마트경제에 미디어산업 현장 칼럼을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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