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식의 미디어빅뱅] 실리콘밸리와 중국의 AI대전
[하재식의 미디어빅뱅] 실리콘밸리와 중국의 AI대전
  • 하재식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 승인 2018.03.2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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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붐, 캘리포니아 골드러쉬와 유사"

[편집자 주]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전면화로 인해 지난 100년 동안 익숙했던 미디어 환경이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 사업자와 넷플릭스, 아마존 등 신규 콘텐트 사업자들이 수 억명의 회원을 거느리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이 와중에 기성 신문, 방송, 매거진 사업자는 생존과 나락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다. 미디어 산업은 본질적으로 오락과 여가적 속성이 강하지만,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언론산업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미디어혁명이 세상 어느 한 곳 영향을 미치지 않는 데가 없는 이유다. 이와 같은 미디어빅뱅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있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하재식 교수가 스마트경제에 미디어산업 현장 칼럼을 연재한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아마존 AI스피커가 바꾼 미국 가정의 풍경

한달 전 저녁식사에 초대받아 이웃집을 방문했다. 그날 대화의 으뜸 주제는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이었다. 주인 애슐리는 얼마 전 아마존의 AI 스피커 ‘에코’를 구입했는데, 금세 그 편리함에 푹 빠져 있었다. 스피커를 향해 “알렉사(에코에 내장된 음성인식 비서), 오늘 날씨 어때?” “타겟(Target), 오늘 몇 시에 문 열지?”라고 묻거나, 장바구니 목록이 생각날 때마다 똑똑한 비서 ‘알렉사’에게 추가시켜 놓는다. 남편은 최근 집안 곳곳의 조명장치를 AI가 조절 가능한 것으로 바꿨다. 덕분에 늦게까지 잠자리에 들기를 거부하는 아들 방의 전등은 저녁 9시면 자동으로 꺼진다.

AI는 먼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할리우드 공상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그런 AI의 존재가 어느새 성큼,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고 있다. 인간이 사람이 아닌 사물과 음성으로 대화하는 시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고대 모든 길의 중심에 있었던 로마 대제국의 위용을 대표하던 이 말은, 이제 ‘모든 길은 AI로 통한다’로 바꿔야 할 판이다.

 

중국의 BAT, 실리콘밸리 AI 벤처 사냥

급속도로 바뀌는 AI 중심의 세계사적 전환을 반영하듯, 세계 AI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간판급 정보통신 및 미디어 기업들의 글로벌 대전도 가히 점입가경이다. AI 대전의 판도는 쉽게 예상이 가능하듯 구글,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IBM 등 실리콘밸리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 이어 검색엔진 ‘바이두’,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인터넷 기업 ‘텐센트’ 등 중국 기업들도 역전의 기회를 노리며 심기일전 중이다. 이들은 자금력을 등에 업고 실리콘밸리의 AI 벤처를 사들이고 있는데, 중국의 엄청난 인터넷 이용자 덕분에 산출되는 각종 데이터는 이들 업체들에 든든한 원군이다.

AI 대전은 인수 및 합병(M&A)에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2017년 AI와 관련된 세계 M&A 규모가 무려 213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2015년과 대비해 26배에 달하는 규모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컴퓨터 과학에서 비교적 주변부에 머물렀던 AI 분야가 인터넷 이용자의 증가로 데이터가 급속히 늘고, 컴퓨팅 파워가 강력해지고, 알고리듬이 더욱 똑똑해지면서 세상의 중심으로 부상했다”고 진단했다. AI가 퍼스널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등장에 대적할 만한 ‘혁명적’ 변화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AI 붐은 19세기 미국에서 꿈을 찾아 금광이 발견된 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든 ‘캘리포니아 골드러쉬’를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미중 정부 간 안보 전쟁으로 격화

AI 대전에는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 정부까지 가담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7월 2030년까지 AI에 1천5백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잡지 ‘뉴 리퍼블릭’은 최근 “미국 의회의 간판급 정치인들이 중국 측의 AI 투자를 미국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보고 있다”며 “이에 따라 중국의 실리콘밸리 투자를 제한하는 법안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지난 2월 ‘AI를 지배하기 위한 중국의 공세’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 정부의 AI 투자는 미국의 아폴로 11호 달 탐사 계획에 비견될 만큼 중국인의 자긍심을 키우고, 획기적 기술 진보를 이뤄내려는 중국의 야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AI는 어려운 전문 용어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우리 주변에서 수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삶과 매우 친근한 과학이다. 넷플릭스의 이용자라면 수시로 사용자의 인적사항이나 과거 이용기록 등을 바탕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추천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에 접속했을 때 당신과 연관성이 있는 페이스북 이용자를 친구로 추천받거나, 당신이 좋아할 정보나 뉴스가 화면에 올라온 경험도 있을 것이다. AI가 당신이 누군인지 분석한 뒤  쓰레기 정보는 숨기는 대신 의미있는 콘텐트를 화면에 배치하는 것이다.

 

AI 전쟁에서 뒤진 야후와 MS

이메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팸메일에 주로 사용되는 단어를 기계가 학습해 이 단어들이 포함된 이메일을 스팸메일로 분류한다. 유튜브의 자동 자막 및 번역 기능, 온라인 광고, 네비게이션 앱, 스마트 온도계 등 각종 분야에서 AI는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편 AI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기업들은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야후와 MS의 검색엔진이 대표적 예다.

일반적으로 AI는 대개 인간이 지능을 써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기계가 대신 수행하는 것을 일컫는다. AI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머신 러닝 (Machine Learning)’인데, 이는 AI의 하부 개념으로 컴퓨터가 스스로 대용량의 데이터에서 어떤 패턴을 발견해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알고리듬’을 더욱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말한다. 마치 부모가 자녀의 학습효과를 높여주기 위해 때로는 혼을 내거나, 때로는 게임시간을 늘려주는 등 채찍과 당근을 시의적절 혼용하는 것처럼 컴퓨터를 일정한 방향으로 학습시키는 것이다.

 

선두주자 아마존, AI로 고객 감정까지 파악 

예컨대 아마존은 최근에 고객이 전화로 상담을 할 경우 즉각적으로 통화내용을 텍스트(글)로 옮겨 고객의 감정 상태를 판단하는 AI 기술을 공개했다. 아마존은 AI 덕분에 전자상거래 뿐만 아니라 재고 관리, 물건 배달 등 모든 각종 사업을 원활히 진행한다. 아마존 물류센터에는 모두 8만 개의 로봇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고, 딸기 등 과일에 대한 주문이 들어오면 AI 기능이 탑재된 전자 기기가 과일이 신선한지 등을 판별해 낸다. 또한 당일 배달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AI를 이용한 드론을 개발 중이다. 의료, 금융, 오락, 쇼핑 등 AI의 활용 범위는 무한하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AI 혈투는 유능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AI 분야 박사학위 소지자는 특별한 경력이 없어도 채용 시장에서 단연 ‘금값’이다. 시장의 수요를 학계의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 한 관계자는 “AI 인재 구하기 경쟁이 마치 월마트에서 벌어지는 추수감사절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 이벤트를 보는 것 같다”고 전했다. 많은 인재를 끌어올 수 있는 학계의 명망가들은 손꼽히는 스카우트 대상인데, 기업들은 인재를 데려올 때 높은 연봉 뿐만 아니라 사용 가능한 독점적 데이터 등을 유인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벤처기업을 통째로 사기도 한다.

 

천정부지 AI 개발자 몸값, 1인당 1000만불

구글은 2014년 수익도 못 내고, 이렇다 할 제품도 만들지 못하던 ‘딥 마인드’를 5억달러에 인수했다. 당시 이 회사가 ‘딥 러닝 (Deep Learning)’ 연구자들을 다수 확보한 점을 높이 샀기 때문에 가능한 거래였다. 이코노미스트는 AI 기업 인수 때 직원 한 명의 가치가 5백만불 내지 1천만불 정도라고 전했다. 이러한 ‘인재 기근’ 현상은 대기업 간 스카우드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마존에서 알렉사 AI를 총괄했던 전문가가 최근 구글의 AI 기술 책임자로 자리를 옮겨 아마존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구글과 우버는 현재 무인자동차 개발과 관련한 기술유출 문제로 소송을 벌이고 있으며, 구글 측은 우버로 이직한 구글 직원이 범행에 가담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AI 대전은 일반 기업들을 상대로 AI 기술 및 시스템을 제공하는 이른바 ‘기업간 거래 (B2B)’ 시장에서도 불붙고 있다. 아마존, MS, 구글 등은 기업을 상대로 인터넷상의 서버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데이터를 저장, 관리, 처리해 주는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 시장의 규모는 약 2천5백억 달러에 달한다. MIT 테크놀러지 리뷰는 “클라우드가 더 이상 데이터 쓰레기장이 아니다”며 “클라우드가 AI 전쟁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MS는 운전자가 우버를 위해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우버 본사에 알리는 신원확인 시스템을 우버에 제공했다. 구글은 구직자와 일반 회사를 연결해 주는 ‘구직 프로그램 인터페이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B2B, 플랫폼, 증강현실 등 전영역에서 펼쳐지는 AI 전쟁

‘사이버 비서’ 역할을 하는 ‘AI 플랫폼’ 경쟁도 점입가경이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스피커를 통해 인간과 컴퓨터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지고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전세계에서 스마트 스피커가 약 3200만대 팔렸다. 이는 전년 대비 3백%나 증가한 것이다. 구글과 아마존이 이 시장의 최대 강자다. 스마트 스피커 부문에서 아마존(에코)과 구글(구글 홈)은 대략 7대3의 비율로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MS, 삼성, 애플, 페이스북, 바이두가 뒤에서 쫓고 있는 형국이다. 책 ‘알고리즘의 대가’의 저자 페드로 도밍고스는 “이들 업체들은 소비자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길목을 장악한 기업이 향후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 대전은 최근 아마존이 구글의 자회사인 ‘네스트’가 제조하는 스마트온도기, 도어벨 카메라, 스마트 연기 탐지기 등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격화됐다. 앞서 구글은 아마존이 판매하는 AI 기기에서 구글 측의 유튜브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또한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을 이용한 AI 기기 시장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AR 기술은 이미 모바일 앱 ‘스냅’이나 세계적 열풍을 몰고 온 모바일게임 ‘포켓몬고’에서 그 가치가 확인됐다. 컴퓨터 화면이 아닌, 가상의 3차원 사물을 현실에 구현하는 AR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기기가 조만간 시장에 쏟아질 전망이다. 특히 드론과 자율주행 차량은 폭풍의 핵이다. 특히 세계 개인교통 시장 규모가 무려 10조억달러. 이코노미스트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이미 수백만 마일을 운행함으로써 독점적으로 소유한 도로 정보를 확보해 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컴퓨터 시각장치가 사물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AR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AI 대전의 최종 승자는 아마존이 아니라 구글이 될 것"

현재 구글, 우버, 테슬라, 애플 등이 자율주행 차량 개발 시장에 뛰어든 상태다. 바이두는 자율주행 차량의 운영체제를 개발 중이다. AI를 수행하는 전용 칩 (Chip)을 개발하기 위한 경쟁도 뜨겁다. 구글, 애플, 아마존, MS가 AI 전용 칩을 개발 중이며, 이미 시장에 출시된 엔비디아 (NVIDIA) 칩과 경쟁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AI 대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현재 AI 대전에서 선두 주자는 단연 구글이다. 이익 규모 외에 확보한 연구자 등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크다. 검색 알고리듬은 말할 것도 없고, 머신러닝 연구에서도 최고다. 이코노미스트는 향후 더욱 치열해질 AI 대전에서 구글의 승리를 예견했다. “구글의 창업자들은 일찍이 머신 러닝의 신봉자였을 뿐만 아니라 AI를 구글의 경쟁우위로 인식했다”는 것이 구글 선두주자론의 핵심이다. 

그렇지만 AI 상품화가 초기 단계인 데다, 4차 산업의 발전과 변화의 속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에서 당장 최종 승자를 점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다른 실리콘밸리 경쟁자들의 추격도 만만치 않고, 특히 중국의 도전이 매섭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2025년쯤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기 시작해 2030년 무렵엔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야말로 AI 대전이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간 국력 대결의 모양새를 띠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AI가 각국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분발과 적극적인 대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특히 AI 플랫폼 시장에서 구글과 아마존이 한창 앞서가고 있는 반면 한국 기업들은 한참 뒤쳐져 있는 게 엄연한 현실. 지금 제대로 추격하지 않는다면 격차는 갈수록 커질 것이다. AI가 바꿀 세상, 과연 우리는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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