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연극리뷰] "그래도 말은 들어줄 수 있는 거잖아요!"…연극 ‘상호작용에 대한 고찰’

2025-08-01     복현명 기자
지난 7월 26일 막을 올린 연극 ‘상호작용에 대한 고찰’은 극단 2악장이 2018년부터 추구해 온 ‘자가면역질환(2018)’, ‘진료는 의사에게(2019)’, ‘용종절제술(2020)’ 등에 이어서 무대에 올리는 의학연극 시리즈 중의 하나다.이 연극이 주목되는 것은 새로운 장르를 모색하면서도 의학연극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면모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사진=김수정.

[스마트경제] #. 올해에도 '거침없이 연극리뷰'가 스마트경제를 통해 매주 금요일에 연극, 뮤지컬 분야 평론가들의 거침없는 연극리뷰 시즌3를 연재한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주간이며 포스트드라마 권위자인 문학박사 김기란 평론가, 연극평론가 숭실대학교 백로라 교수, ‘한 줄도 좋다, 우리 희곡’의 저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교양학부 객원교수 정수진 평론가, 전방위적인 비평과 연극평론을 하고 있는 대경대 연기예술과(연극영화과) 교수 김건표 평론가가 매주 릴레이로 연재한다(편집자주).

 

◇창작극 발굴을 위한 의미 있는 기획, 페스티벌 ‘극장전’

여행자극장이 2018년부터 순수 창작극 발굴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획해 온 페스티벌 ‘극장전’이 올해에도 막을 올렸다.

해외에서 주목받은 동시대 번역극이나 스타시스템을 활용한 블록버스터 연극들이 강한 경쟁력을 발휘하는 공연 현실을 고려할 때 여행자극장의 페스티벌 ‘극장전’은 그 소박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꽤 의미 있는 기획으로 보인다.

이것은 ‘신춘문예단막극전’과는 또 다르게, 창작극뿐 아니라 차세대 극작가와 연출가를 동시에 발굴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편견과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의학연극

올해 ‘극장전’에서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다룬 의학연극 ‘상호작용에 대한 고찰’(박현정 작, 연출, 7.26.-28, 8.1-3)과 비발디 사계와 4색의 희곡을 접목한 댄스씨어터 ‘옷’(최경훈 안무, 연출, 8.8-8.17)이 소개된다.

이 중에서 지난 7월 26일 막을 올린 ‘상호작용에 대한 고찰’은 극단 2악장이 2018년부터 추구해 온 ‘자가면역질환(2018)’, ‘진료는 의사에게(2019)’, ‘용종절제술(2020)’ 등에 이어서 무대에 올리는 의학연극 시리즈 중의 하나다.

연극 ‘상호작용에 대한 고찰’이 주목되는 것은 새로운 장르를 모색하면서도 의학연극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면모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특히 정신질환의 증상이나 치료의 문제보다 그러한 증상과 환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문제를 제기하고 의학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 사회와 인간 존재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연극은 유사한 소재를 다루는 기존의 연극과 차별화된다. 사진=김수정

이 연극이 주목되는 것은 새로운 장르를 모색하면서도 의학연극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면모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특히 정신질환의 증상이나 치료의 문제보다 그러한 증상과 환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문제를 제기하고 의학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 사회와 인간 존재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연극은 유사한 소재를 다루는 기존의 연극과 차별화된다.

 

◇호기심과 긴장을 조성하는 극적 구조

연극 '상호작용에 대한 고찰'은 온주시립정신병원의 콜센터를 배경으로 8년 경력의 상담원 배태랑과 신입 직원 유창성이 환자나 환자 가족과 통화하는 상황을 주로 다룬다.통화나 잡담이 주된 액션을 이루기 때문에 서사가 복잡하거나 극적 갈등이 심각하지 않다. 사진=김수정

이 작품은 온주시립정신병원의 콜센터를 배경으로 8년 경력의 상담원 배태랑과 신입 직원 유창성이 환자나 환자 가족과 통화하는 상황을 주로 다룬다.

통화나 잡담이 주된 액션을 이루기 때문에 서사가 복잡하거나 극적 갈등이 심각하지 않다.

그럼에도 9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극적 긴장감이 팽팽하게 유지되는데 이것은 두 가지 요인에서 연유한다.

하나는 동일한 상황이 세 장(3, 4, 5장)에 걸쳐 반복, 변주되는 극의 구조 때문이며 또 하나는 신입 직원 창성이 긴장하면 말을 더듬는 ‘유창성 장애’가 있는 인물로 설정된 것과 관계된다.

이때 전자가 관객의 호기심을 증폭시킨다면 후자는 극적 긴장감을 절정까지 끌어올리는 기능을 한다.

◇동일한 상황의 반복과 변주

연극 '상호작용에 대한 고찰'은 극 초반 콜센터 직원의 일상적인 근무 상황이 연출되다가 본격적으로 극이 전개되면 동일한 상황이 세 장에 걸쳐서 반복, 변주된다. 사진=김수정

극 초반 콜센터 직원의 일상적인 근무 상황이 연출되다가 본격적으로 극이 전개되면 동일한 상황이 세 장에 걸쳐서 반복, 변주된다.

각 장마다 시계가 동일하게 오후 5시 20분을 가리키고 태랑과 창성이 한가하게 스콰트를 하거나 책을 읽는다.

이때 갑자기 실내등이 깜박이고 전화벨이 울린다. 첫 장면에서 도움을 청했다가 태랑의 무성의한 대응에 전화를 끊어버렸던 조현병 환자 ‘창조자’가 다시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창성은 매뉴얼대로 창조자에게 예약 안내를 하지만 조현병 환자인 그는 논리에 맞지 않는 엉뚱한 말을 늘어놓는다.

둘의 통화가 길어지자 태랑은 퇴근 시간이라며 통화 종료를 재촉하고 창조자는 계속 말을 이어가며 전화를 끊지 않는다.

이에 창성은 당황해 점점 말을 더듬는다. 이와 같은 상황이 세 차례 반복되는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상황이 추가되거나 특정 상황이 변주되는 것이다.

◇사적인 담화, 상호작용의 출발점

예를 들자면 처음에는 두 인물이 말없이 스쾃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퇴근 시간을 기다린다.

창조자의 전화를 받을 때도 매뉴얼대로 예약 시간을 안내한 뒤 일방적으로 통화를 종료한다.

암전 후 두 번째 장면이 시작되면 앞 장과 동일한 상황이 전개되지만 이번에는 스쾃을 하던 태랑이 갑자기 창성에게 말을 건다.

창성의 말더듬 증상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다. 이에 창성은 긴장할 때 말이 막히는 유창성 장애가 있다고 솔직하게 말해준다.

이어서 창조자와의 통화 장면이 반복되지만 앞 장과 달리 창성이 아닌 태랑이 예약 안내를 하고 일방적으로 통화를 종료한다.

이로 인해 두 인물은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의견 차이를 드러내며 갈등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책을 읽던 창성이 태랑에게 정신질환에 관한 의학 지식이 풍부하다며 칭찬하자 태랑은 정신질환을 앓았던 죽은 동생에 대해 얘기해준다.

이처럼 태랑과 창성이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사적인 담화를 나누는 장면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연극 '상호작용에 대한 고찰'은 관심과 신뢰로부터 ‘상호작용’이 시작되는 것임을 이 연극은 넌지시 암시해 준다. 사진=김수정

질문이 상대를 향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사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솔직한 담화는 상대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과 신뢰로부터 ‘상호작용’이 시작되는 것임을 이 연극은 넌지시 암시해 준다.

 

◇변화와 역전을 이끄는 ‘상호작용’

연극 '상호작용에 대한 고찰'에서 태랑과 창성 사이에서 일어난 ‘상호작용’은 마치 나비효과처럼 조현병 환자와의 관계에도 변화를 초래한다. 사진=김수정

태랑과 창성 사이에서 일어난 ‘상호작용’은 마치 나비효과처럼 조현병 환자와의 관계에도 변화를 초래한다.

두 인물이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창조자를 대하기 때문이다.

창조자가 극단적인 행동을 예고하자 그의 죽음을 막기 위해 두 인물은 적극적인 행동을 취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지금까지 반복됐던 상황이 역전된다. 태랑은 경찰에 도움을 청하고 창성은 창조자가 전화를 끊지 못하도록 계속 말을 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적극적인 도움의 행동을 취하는 순간 두 인물은 창조자를 비롯한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그동안 느꼈을 법한 ‘무력감’을 경험하게 된다.

태랑은 매뉴얼대로 무심하게 대응하는 경찰에게 분노를 폭발하며 창성은 긴박한 순간에 말더듬 증상이 심해져서 어떠한 말도 표현하지 못한다.

결국 두 인물은 창조자에게 예약 절차나 구비 서류는 필요 없으니 당장 병원으로 달려오라고 외친다.

이것은 창조자에게 일방적으로 예약 안내만 하고 통화를 종료했던 이전 상황과 대조되는 행동으로 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창조자는 뛰어내리는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

이 장면에서 ‘모두가 천사라면’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태랑과 창성은 창조자의 손을 잡고 음악에 맞춰 꽥꽥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것은 비현실적인 장면으로서 창조자와 소통하고자 하는 이들의 내면 의식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무력감을 강화하는 질문,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연극 '상호작용에 대한 고찰'은 태랑의 첫 대사 “온주시립정신병원 콜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대사로 막을 내린다. 사진=김수정

이 연극은 태랑의 첫 대사 “온주시립정신병원 콜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대사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이 대사는 무력감을 강화할 뿐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질문의 주체가 하루에도 200통이 넘는 상담 전화를 받아야 하는 콜센터의 감정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태랑이 신입 직원 창성에게 전화 응대의 팁을 전해주는 부분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전화 받을 땐 상대방이 널, 뭐랄까, 따뜻하지만 단단한 벽이라고 느끼게 만들어야 해. 질문이 더 있어도 왠지 더 묻기 껄끄럽도록. 저 사람이 분명 친절하게 대답은 해주는데 뭔가 소통이 안 되는 것 같다고 느끼도록. 하지만 딱히 꼬투리 잡을 만한 건 없어서 스스로 전의를 상실하도록.”

태랑은 창성에게, 상담원은 대화하는 존재가 아니니 대화는 집에 가서 엄마랑 하라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여기서 대화란 상호작용을 의미하는데 상대방과 상호작용을 하기 시작하면 말이 길어지니 피하라는 것이다.

정신병원 콜센터 직원에게 대화를 하지 말라니! 대화가 아니라면 이들이 상대방과 주고받는 말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러나 묘하게도 이 연극에서 이러한 태랑의 ‘무관심한 친절’이나 ‘유체이탈 화법’이 위선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노동의 강도, 고단함, 정신적 스트레스를 짐작하게 만든다.

이들 역시 누군가의 관심과 위로가 필요하다. 또 다른 의미에서 사회적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화를 걸어오는 조현병 환자와 다를 바 없이 콜센터의 태랑과 창성 역시 그들과 상호작용 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또 다른 정신적 질병에 대한 경고

사실상 조현병 환자를 포함해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어렵다.

연극 '상호작용에 대한 고찰'에서 조현병 환자는 지속적으로 콜센터에 전화를 걸고 상담원에게 말을 건다. 이 연극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또 다른 정신적 질병에 대해 경고한다. 사진=김수정

그럼에도 이 연극에서 조현병 환자는 지속적으로 콜센터에 전화를 걸고 상담원에게 말을 건다.

세계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 연극은 콜센터 직원이 오히려 이러한 소통의 욕망이나 상호작용의 욕망이 결핍된 상황을 보여준다. 조현병이나 조현병 환자에 대해 다루면서 동시에 그들보다 더 결핍된 인간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연극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또 다른 정신적 질병에 대해 경고한다.

어느 누구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어느 누구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 비정하고도 무심한 세상에서 저도 모르게 병들어가는 존재들로 우리의 시선을 이끈다.

 

◇관객에게 남겨진 과제, ‘상호작용에 관한 고찰’

연극 '상호작용에 대한 고찰'에서 장면의 앞부분과 끝부분에 “코드 그레이. 코드 그레이. 51병동 입원 환자 도착 10분 전입니다”와 “코드 그레이. 코드 그레이. 51병동 확진자 도착입니다.”라는 원내 안내 방송을 들려준다.환자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으로 시작해 도착을 알리면서 장면을 마무리하는 식이다. 사진=김수정

이 연극에서는 주요 장면의 앞부분과 끝부분에 “코드 그레이. 코드 그레이. 51병동 입원 환자 도착 10분 전입니다”와 “코드 그레이. 코드 그레이. 51병동 확진자 도착입니다.”라는 원내 안내 방송을 들려준다.

환자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으로 시작해 도착을 알리면서 장면을 마무리하는 식이다.

이것은 조현병 환자나 감염병 환자뿐 아니라 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상징적으로 어떠한 질병에 걸린 환자들이며 이들이 보여주는 극적 상황은 다름 아닌 그러한 질병의 구체적인 증상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해 준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태랑과 창성의 상호작용, 이들과 조현병 환자의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슬며시 비춰줌으로써 그러한 질병의 치유나 예방법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해 준다. 그러니 연극의 제목 ‘상호작용에 대한 고찰’은 이 연극의 관객들이 앞으로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과제에 해당하는 셈이 된다.

 

◇배우의 연기력과 존재감이 빛나는 공연

소극장 연극은 무대 공간이 비좁기 때문에 연출의 무대 미학을 엿보는 것이 쉽지 않다.

이 연극도 책상과 의자, 컴퓨터와 전화기라는 최소한의 소도구로 콜센터라는 극적 공간을 표현한다.

그리고 출근 시간이나 퇴근 시간을 알려주는 커다란 시계,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는 화초나 인형과 같은 소품 몇 개, 비현실적인 상황의 전개를 암시하는 깜박이는 조명 정도가 활용된다.

그러나 소박한 무대장치 덕분에 오히려 배우들의 연기가 더욱 눈에 들어왔던 경우였다.

연극 '상호작용에 대한 고찰'은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표현된 점은 이 연극의 강점이라 할 만하다. 사진=김수정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표현된 점은 이 연극의 강점이라 할 만하다.

처음에는 화술에 다소 한계가 있는 배우라고 착각할 정도로 말 더듬는 연기를 표정과 대사로 리얼하게 표현한 신입 직원 유창성 역의 노독립 배우, 무의미하고도 몽환적인 언어를 자신의 언어처럼 뻔뻔하리만큼 태연하게 연기한 창조자 역의 김상보 배우, 그리고 선배 상담사 배태랑 역을 섬세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한 이화정 배우의 연기 앙상블이 돋보였다.

이 중에서도 특히 상담사 특유의 친절하지만 절제된 말투로부터 찰진 욕설과 능청스러운 사투리를 오가며 배태랑 역을 연기한 배우 이화정씨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베로나의 두 신사’에서도 중성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연기를 보여준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번 공연에서 자신이 가진 배우로서의 역량과 매력을 가장 눈부시게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부터 출발한 듯한 호흡과 눈빛, 그리고 인물의 정서와 심리를 담아내는 리듬감 있는 대사 톤이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력과 존재감이 빛나는 공연은 관객을 결코 지루함에 빠뜨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 경우다.

 

백로라(연극평론가)/ 숭실대 문예창작전공 교수, <연극평론> 편집위원, <한국연극> 부주간

 

 

 

 

 

 

 

스마트경제 복현명 기자 hmbok@dailysma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