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우익 라노벨 퇴출 사건의 배경…급성장한 한중 시장
日 우익 라노벨 퇴출 사건의 배경…급성장한 한중 시장
  • 백종모
  • 승인 2018.06.1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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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소미미디어
사진=소미미디어

 

혐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일본 작가의 소설과 애니메이션이 시장에서 퇴출됐다. 과거에도 극우 성향의 작품들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으나 퇴출이 된 것은 처음이다. 한국과 중국의 관련 시장의 영향이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된 '두 번째 인생은 이세계에서'는 인터넷 연재 처에서 1억 뷰를 기록하고 종이책은 100만권이 판매된 인기 라이트노벨(만화풍 삽화의 비중이 높은 대중 소설의 한 장르·이하 라노벨)이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 중이었으며, 올해 10월 방송될 예정이었다. 국내에도 소설이 정식 출간된 상태다.

여러 라노벨 관련 커뮤니티에 따르면 이전부터 이 소설의 내용이나 작가의 헤이트 스피치(차별 발언)이 문제가 되어왔으나, 지난 5월 애니메이션 제작 발표 뒤 중국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 그 내용이 확산됐다. 

이 소설은 검술의 달인이었던 주인공이 이세계(異世界·현실 세계와 다른 판타지 세계)에 환생해 고블린·오크 등의 괴물을 일본도로 처치하는 내용을 다룬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2차 세계 대전중 발생한 난징대학살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있다.

 

코믹판 '두번째 인생인 이세계에서' 중=가도카와 쇼텐
코믹판 '두번째 인생인 이세계에서' 중=가도카와 쇼텐

 

소설 중 주인공의 전생에 대해 "15세 때부터 중국대륙으로 건너가, 흑사회의 무장 구성원으로 활동, 그 후 세계 대전에 종군. 4년의 종군기간 중 살해 수는 3712명. 전부 칼로 베어 죽였다. 94세 1237일째에 노쇠로 사망. 생애 살해 수 5730명"이라고 설명했다.

소설의 연재가 시작된 시기(2014년)으로부터 계산하면 주인공은 2차 세계대전 시기인 1935~1943년 동안 중국에서 수천 명을 살해한 것이다. 특히 3712과 1237이라는 숫자는 난징대학살이 발생한 1937년의 37과, 최소 희생자 추정 수치인 12만명의 12를 연상시킨다. 주인공이 전생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복을 입고 나오기도 한다. 

주인공은 판타지 세계로 환생한 이후에도 판타지 세계에서 괴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칼로 베어 죽이는데, 인체 실험을 즐기는 적만은 유일하게 살려주는 관용을 베풀기도 한다. 

이 소설의 작가 마인(マイン)이 2013년 트위터에서 한국과 중국을 비하하는 차별 발언을 이어온 행적도 문제가 됐다. 그는 한국과 중국을 '간국(姦國·강간국가)'·'충국(?國·벌레국가)'라고 칭했다. 한국·중국의 일본 발음과 같다는 점을 이용한 멸칭이다.  

그는 "역시 강간 국가다. 얼굴 가죽이 발바닥만큼이나 두껍다", "강간 국가의 원숭이는 정말 버릇이 나쁘다", "일본 최대의 불행은 이웃에 간국이라는 세계최악의 동물이 살고 있는 점이라 생각한다"며 한국을 모멸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놀랐다. 중국인이 도덕심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단 말이야?"며 비아냥댔다.

관찰망 등 중국의 여러 매체가 이에 대해 보도한 가운데,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지난달 30일 "중국이 보면 격노할 일본 소설"이라며 비판했고 "중국 네티즌 다수가 '이 소설은 정상인이 참을 수 있는 한계를 완전히 넘었다'며 판매 금지를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도 여러 라노벨 관련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된 가운데 '넷우익(인터넷상의 극우주의) 판타지물'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논란이 되자 소설의 원작자 마인은 트위터를 통해 "트위터에 부적절한 표현이 있었던 점에 대해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두 번째 인생은 이세계에서'에서 불쾌감을 드린 문장이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사과드린다"고 트위터를 통해 5일 밝혔다.

작가의 혐한 발언 / 사진= 마인 트위터
작가의 혐한 발언 / 사진= 마인 트위터

 

또한, 6일 애니메이션에 캐스팅된 성우 4명이 하차 의사를 밝혔으며 소설 출판사인 하비재팬이 해당 라노벨의 출하 정지를 결정했다. 다음날 애니메이션의 제작 중단 및 소설의 출하 정지 소식이 전해졌다. 소설 출판사인 하비재팬도 라노벨을 국내에 출간했던 소미미디어 또한 이 작품의 전자책 서비스를 중지한 뒤, 종이책 출판 여부에 대해 "원작자 측과 협의해 조치를 검토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소설이 사실상 퇴출당한 가운데, 앞으로 관련 시장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라노벨은 그 자체의 시장성뿐 아니라 만화·애니메이션화 되기 쉬운 확장성 탓에 산업적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최근 몇 년 새 중국의 애니메이션 시장이 급성장해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태다. 일본 무역진흥회에 따르면 중국의 애니메이션·만화 시장 규모는 1497억위안(약25조1137억원·2016년 기준)이며, 일본 애니메이션 콘텐츠의 최대 수출국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8할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부터는 중국 자본으로 제작된 일본 애니메이션도 등장했다. '은의 묘지기', '영검산' 등의 애니메이션은 중국 IT기업 텐센트가 자본을 투자해 일본에서 제작됐다. 이들 작품의 원작은 중국 웹소설이다.

한국의 라노벨 시장 또한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인다. 예스24에 따르면 도서 시장에서 라노벨의 2018년 상반기 점유율은 5.6%다. 같은 기간 국내 국내 문학 분야와 동일한 비중이다. 국내 라노벨 시장은 주로 일본 작품들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한국 또한 일본의 중요한 고객인 셈이다. 

국내 라노벨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국내에 출간된 다른 라노벨 또한 작가가 우익 성향을 나타내 한국 독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대응이 주목되는 상황이다.

이번 '두번째 인생은 이세계에서'의 사례는 향후 일본 라노벨 및 애니메이션 업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출간 단계에서부터 작품의 내용이나 작가의 성향 등에 대한 검증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백종모 기자 phanta@dailysm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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