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식] '표현의 자유' 수위 어디까지…페이스북의 딜레마
[하재식] '표현의 자유' 수위 어디까지…페이스북의 딜레마
  • 하재식 교수
  • 승인 2018.08.06 10: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재식의 미디어빅뱅] '표현의 자유'에 대한 소셜미디어의 딜레마
페이스북,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에 칼 빼 들어...
소셜미디어의 콘텐츠 정화정책…민주주의에 약일까 독일까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사용을 금지?…소셜 미디어의 딜레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정보를 올려' 트위터의 콘텐츠 정책을 위반하고 있지만, 트위터 본사는 트럼프가 계속해서 트위터를 사용토록 하고 있다. 대통령의 트위터 사용을 금지한다면, 당사자인 트럼프가 얼마나 아우성을 치면서 반발할지 상상해 보라"

미국의 정보기술(IT) 전문 저널리스트 '파하드 만주'는 7월 26일 자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독점 칼럼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사례로 들며 '표현의 자유'를 놓고 소셜 미디어 업계가 겪고 있는 딜레마를 이같이 지적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가짜정보를 유통시키는 이용자들을 규제하기 위해 야단법석을 떨고 있지만, 투명성과 실효성이란 측면에서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부정 게시물 방치…우왕좌왕하는 페이스북

과연 소셜미디어에서 '표현의 자유'는 어느 정도까지 허용돼야 할까. 사실, 표현의 자유 문제는 구글,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뿐만 아니라 뉴스나 정치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인터넷 기업들에도 중대한 사안으로 부상했다. 특히 페이스북, 트위터 등은 가짜뉴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뒤늦게 내용의 허용 범위를 놓고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해 허둥대고 있다. 예컨대 페이스북은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거짓 정보가 확산되고, 외국 정부가 선거에 개입하는 주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페이스북은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물이 실질적 폭력을 유발할 수 있는 가짜정보로 확인되면 곧바로 페이스북에서 삭제하겠다고 지난 7월 발표했다. 이를 위해 지역의 언론기관과 협력해 정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계획이다. 우선 페이스북의 가짜정보로 실제 폭력사태까지 발생했던 스리랑카과 미얀마에서 당장 이 정책을 실시키로 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이 같은 정책발표와 달리, 사이트에 올라오는 콘텐츠를 어떻게 관리할지를 놓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지난 7월 중순 한 IT 전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홀로코스트(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를 부정하는 게시물을 페이스북에서 차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글을 올린 이들이 의도적으로 부정확한 정보를 올린 것이 아니므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 거짓 정보를 올린 이들과 똑같은 제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커버그의 입장 때문에, 이번 정책은 결국 '이현령비현령(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주먹구구 정책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저커버그는 언론, 시민단체, 그리고 네티즌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유대인 단체 '반명예훼손연맹'(ADL)은 성명을 통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것은 반유대주의자들이 계획적이고, 의도적이고, 장기간에 걸쳐서 해온 기만전술이고, 이는 논쟁의 여지 없이 유대인들을 증오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고, 위협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페이스북은 면책 특권을 누릴 수 있는 단순 컨텐츠 매개자인가?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7월 20일 자 보도에서 마크 저커버그의 발언은 외부 비판에 대한 페이스북의 판에 박힌 대응 패턴에 합치한다고 꼬집었다. "페이스북 서비스가 실질적 해악을 끼쳤다는 비판에 직면했을 때, 페이스북 경영진들은 다음과 같은 대응을 했다. 첫째,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토로한다. 둘째, 좀 기다리고 인내해 달라고 요청한다. 셋째, 그들이 정치적 중립성에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누구보다 벌어진 일들에 깜짝 놀랐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페이스북 경영진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에 대한 페이스북 규칙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너무 느리고, 문제를 제대로 고치지도 못하고, 확고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과연 페이스북을 콘텐츠를 전달하는 단순 '매개자'로 볼 것인지, 아니면 불법적인 내용을 발행하면 처벌을 받는 전통적 발행업자로 봐야 하는지에 달려있다. 사실 그동안 소셜 미디어 업체들은 정보 유통의 단순 통로라는 이유로 자사 사이트에 올라오는 불법 및 가짜정보에 대해 면책 특권을 누렸다. 이와 관련, 디자인에이전시 '7 로봇'의 최고경영자 새라 스자라비츠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은 이미 발행업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콘텐츠에 책임이 있는 발행업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글로벌 소셜 미디어…불의를 부추기는 악당으로 남을 것인가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 문제는 향후 현실 세계에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사안이다. 이미 우리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유통된 가짜정보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미얀마 및 스리랑카에서의 대규모 유혈 사태 등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러한 파급력과 영향력을 고려할 때, 소셜 미디어 스스로 자체 정화 노력을 끊임없이 펼치지 않는다면 이들 공룡급 글로벌 미디어는 세상을 지배하고, 불의를 부추기는 악당으로 남을 것이다. 향후 소셜 미디어는 인터넷에 올라오는 콘텐츠를 정화하기 위한 혁신적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내놓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AI)이 더욱 활용될 것이고, 팩트체커(Fact-checker), 보안 전문가 등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하지만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소셜 미디어가 인터넷에 어떤 정보가 올라올지, 어떤 정보를 삭제할지 등을 결정하는 권한을 확대해 갈 경우 표현의 자유가 자칫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막대한 권력을 누리는 소셜 미디어가 강력한 콘텐츠 정화 정책을 펴면 펼수록 전 세계의 공론장에 더욱 영향을 발휘하는 등 이들의 권력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표현의 자유'와 '가짜정보 확산 방지' 사이 균형의 추는 어디에

이제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페이스북이 앞으로 행사할 권한의 범위를 적절하게 통제하는 것이 향후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있어 핵심 사안이 됐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확산되면서 표현의 자유와 가짜정보의 확산방지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의 추를 맞추는 게 우리에게 시대적 과제가 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인간성을 파괴하는 댓글 문화와 소셜미디어 이용 행태가 심각한 사회적 우려를 낳고 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 벌어지는 '표현의 자유' 논쟁이 단순히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하재식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angelha71@gmail.com)

 

Ta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