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연극리뷰] 숨 막히게 아름답고 잔혹한,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거침없이 연극리뷰] 숨 막히게 아름답고 잔혹한,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 복현명
  • 승인 2024.06.1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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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19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된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널리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재창조한 댄스 뮤지컬이다. 사진=©Studio AL, LG아트센터
지난달 8일~19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된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널리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재창조한 댄스 뮤지컬이다. 사진=©Studio AL, LG아트센터

[스마트경제] #. ‘거침없이 연극리뷰’가 스마트경제를 통해 매주 금요일에 새롭게 찾아간다. 한국연극을 대표하는 4명의 연극평론가가 거침없는 연극리뷰를 연재하기로 한 것이다. 
거침없이 연극리뷰 평론 필진은 월간한국연극 편집주간으로 포스트드라마 권위자인 문학박사인 김기란 평론가,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부회장인 숭실대학교 백로라 교수(연극평론가), 한국연극의 승부사들, 동시대연극읽기 등 연극서적을 발간하고 한국희곡 편집주간으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방위적으로 연극평론 활동을 하고 있는 대경대 연기예술과 김건표 교수, ‘한 줄도 좋다, 우리 희곡’의 저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양학부 정수진 교수가 매주 릴레이로 연재할 예정이다.(편집자주)  

막이 열리면 두 인물이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이 보이고 붉은 천이 허공을 가르며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이미지의 간결함과 선명함이 돋보이는 시적 오프닝이다. 

곧이어 장중하지만 발랄함과 슬픔이 묘하게 섞인 듯 프로코피예프의 발레곡 ‘로미오와 줄리엣’이 울려 퍼지면서 매튜 본의 댄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다. 


◇춤을 통한 드라마의 완성, 매트 본의 댄스 뮤지컬

지난달 8일~19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된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널리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재창조한 댄스 뮤지컬이다. 

작품의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모른다고 할지라도 관객 대부분이 그 줄거리 정도는 어느 정도 꿰고 있기에 극장을 찾은 관객의 관심은 셰익스피어나 원작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매튜 본의 전복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무대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관객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리라.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 백조 대신에 상의를 벗고 깃털 바지를 입은 근육질의 남성 백조들이 등장해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백조의 호수’는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처럼 매튜 본은 고전 발레의 환상적인 동화를 살아있는 현실의 이야기로 재창조하고 정형화된 발레 동작을 일상적인 신체 동작과 자유로운 현대무용에 가깝게 재구성한 안무를 통해 강한 대중흡인력을 발휘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그가 추구하는 ‘댄스 뮤지컬’은 ‘드라마 발레’와 유사해 보이지만(우연인지 케네스 맥밀란의 드라마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도 5월 8일~5월 10일에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됐다) 드라마의 흐름 속에서 주인공의 심리와 정서적 변화를 표현하는 데 초점을 두는 드라마 발레와 달리 그것은 드라마의 서사와 갈등이 훨씬 더 완성도 있게 표현된다. 


◇10대들의 갈등과 사랑, 그리고 화해 없는 죽음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근미래, 베로나 인스티튜트를 배경으로 억압받는 남녀 청소년들의 갈등, 사랑, 그리고 죽음을 다룬다. 사진=©Studio AL, LG아트센터

원작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무대는 연출의 고유한 관점과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관극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50년대 뉴욕의 웨스트사이드 지역을 배경으로 폴란드계 백인 갱단과 푸에르토리코계 갱단이라는 10대 갱단들 사이의 갈등을 그렸다면 리투아니아의 세계적인 연출가 오스카라스 코르슈노바스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현대 이탈리아의 두 피자 가게를 배경으로 청춘남녀의 사랑과 희생을 다룬 경우다. 

이들 작품과는 또 다르게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근미래, 베로나 인스티튜트를 배경으로 억압받는 남녀 청소년들의 갈등, 사랑, 그리고 죽음을 다룬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러하듯 ‘로미오와 줄리엣’도 핵심적인 서사 모티프를 제외하고는 셰익스피어의 흔적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 작품은 근미래의 가상 공간, 베로나 인스티튜트(Institute, 연구소 혹은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청소년들이 엄격한 통제와 감시 아래, 획일화된 교육을 받으며 갈등하는 상황을 다룬다. 

원작과 유사하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과 죽음의 서사를 다루면서도 두 가문의 불화 대신에 청소년들을 감시하는 경비원, 이들을 규율하고 획일화시키는 규칙과 제도, 그리고 자녀를 기관에 방치하는 부모의 무관심과 이기심 등을 주된 갈등의 요인으로 제시한다.  
극 초반 줄리엣은 경비원 티볼트에게 성폭행을 당하여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다. 

그리고 로미오는 부모의 일방적 결정으로 인스티튜트에 입소하면서 깊은 상처를 받는다.

어느 날 이들은 댄스 파티에 참여하여 함께 춤을 추면서 서로의 결핍과 상처를 이해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를 눈치챈 티볼트의 개입으로 줄리엣은 다시 폭력적 상황에 노출되고 이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티볼트가 살해된다. 

이 모든 책임을 떠안고 로미오는 격리돼 감금된다. 이후 줄리엣이 남몰래 로미오를 찾아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바로 그 순간 줄리엣은 죽은 티볼트의 환영에 시달리며 정신 착란을 일으키고 결국 로미오를 티볼트로 오인해 칼로 찌르고 만다. 

정신이 돌아온 줄리엣은 로미오의 죽음 앞에서 절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클로징 장면은 오프닝 장면과 동일하게 연출돼 수미상관을 이루지만 침대에 나란히 누운 로미오와 줄리엣의 온몸은 피로 얼룩져 있다.

그리고 원작과 달리 이들의 죽음은 그 어떠한 화해나 갈등의 해결도 불러오지 않은 채 그대로 막이 내린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프로코피예프의 발레 음악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언어(대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춤과 음악만으로 이와 같은 극적 서사와 갈등을 관객에게 온전하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사진=©Studio AL, LG아트센터

이 공연이 놀라운 것은 언어(대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춤과 음악만으로 이와 같은 극적 서사와 갈등을 관객에게 온전하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발레 테크닉 외에도 무용수의 일상적인 동작과 몸짓, 그리고 표정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연극적인 방식으로 표현되는 매튜 본 공연의 특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공연의 경우에는 ‘음악의 힘’이 지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셰익스피어의 원작보다 프로코피예프의 발레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갈등 구조를 따라갔다는 매튜 본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음악이 극의 흐름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프닝부터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은 묘하게 마음을 사로잡는다.

‘딴 따딴따 딴 따~’ 그 특유의 멜로디가 반복돼 변주될 때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누군가가 저벅저벅 심장을 밟으며 걸어 올라오는 듯한 그래서 온몸이 조여오고 압도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본래 발레곡 ‘로미오와 줄리엣’(1935)을 작곡할 때부터 프로코피예프는 등장인물, 극적 상황과 사건, 갈등, 인물의 심리를 상징하는 핵심 모티프를 사용하여 다양한 선율을 만들어 냈다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 구체적인 코멘트까지 적어놓았다고 하니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드라마라고 평가될 만큼 정교하게 작곡된 것이 바로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그래서인지 음악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라고 할 정도로 상당히 정서적이고 극적인 특성을 갖는다. 

‘작곡가 테리 데이비스와 15인의 앙상블이 편곡 작업에 참여해 51개의 오리지널 스코어 중에서 30곡을 선정해 재배치하고 5곡의 신곡을 추가했다’고 하니 이 공연 음악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짐작이 될 만하다. 

‘음악은 대본’이라고 밝힌 매튜 본의 말이 거듭 떠오르면서 그의 공연에서 왜 음악이 그토록 강렬한 울림을 주는지 이해하게 된다. 


◇무도회 장면의 빛나는 미장센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의상이 보여주는 다양한 색채 이미지들은 이들의 개성적인 정체성을 상징하면서 무대 전체를 압도하는 ‘백색의 획일화’에 효과적으로 저항한다. 사진=©Studio AL, LG아트센터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들은 그 표현 매체나 형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무도회 장면, 발코니 장면, 그리고 무덤 장면 등을 빼놓지 않는다. 

그것이 사랑의 발견, 사랑의 고백, 그리고 비극적 죽음이라는 원작의 주요한 서사적 줄기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매튜 본 역시 이러한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연출해 내는데 이 중에서도 무도회(댄스 파티) 장면은 가장 미장센이 빛나는 장면으로 꼽을 만하다.(물론 대부분의 평론가나 언론은 ‘발코니 듀엣’을 최고로 손꼽지만 말이다.) 

흰색의 색채 이미지가 강조된 이 작품의 무대세트는 단순하되 지극히 상징적이다. 

타일 무늬의 바닥과 벽을 포함해철제로 된 창살이나 펜스까지 무대 전체가 흰색으로 덮여 있어서 2층 위쪽에 ‘베로나 인스티튜트’라고 써붙여 놓았음에도 공간 전체가 감옥이나 병원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무대에 등장하는 청소년뿐 아니라 이들을 감시하는 경비원이나 관리자들까지도 모두 흰색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이러한 흰색의 색채 이미지는 순수나 무결점을 상징한다기보다는 다양하고 개성적인 존재들에게 몰개성을 강요하고 하나의 색채로 획일화시키려는 폭력적인 세계를 환유한다. 

감옥이나 병원과도 같은 폐쇄적인 공간, 감시와 통제 대상으로서의 신체, 그리고 부자유한 신체 동작 이미지는 이 공연 전체에 걸쳐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감금, 통제, 억압, 부자유, 몰개성, 획일화가 지배하는 세계가 바로 10대 청소년들의 직면하는 세계라면 이러한 세계에 가장 효과적으로 저항하는 액션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무도회(댄스 파티)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는 핑크색과 파란색 풍선이 날아갈 듯 공중에서 하늘거리고 흰색의 유니폼을 입고 있던 청소년들은 알록달록하면서도 다양한 디자인의 의상을 입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들의 의상이 보여주는 다양한 색채 이미지들은 이들의 개성적인 정체성을 상징하면서 무대 전체를 압도하는 ‘백색의 획일화’에 효과적으로 저항한다. 

이러한 의미는 역동적인 춤동작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정형화된 기계적인 동작으로 춤을 추던 청소년들이 감시자가 무대를 떠나자마자 경쾌하고 자유롭게 역동적인 춤을 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 무대 천장에 매달린 거대하고도 화려한 미러볼은 백색의 무대 전체를 형형색색의 빛깔들로 가득 채우며 이들 10대 청소년들의 내적 욕망을 시각화한다. 

이처럼 밝고 다양하고 발랄하고 빛나는 것이 바로 10대의 맨얼굴임을 매튜 본은 미장센이 탁월한 장면 구성을 통해 관객들에게 감각적으로 제시해주는 것이다.   


◇발코니 듀엣의 아름다운 ‘발레’

'무용 역사상 가장 긴 키스 장면'으로 더욱 널리 알려진 ‘발코니 듀엣’ 장면은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중에서도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성취한 장면으로 평가될 만하다. 

실제로 발코니가 없는 무대세트 때문에 영화 같은 발코니 장면을 연출하지 않는 대신에 매튜 본은 수직적 높이를 활용한 다양한 춤동작을 통해 발코니의 물리적 공간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입술을 떼지 않은 채 바닥을 구르며 춤추는 동작과 아울러 아름다운 발레 동작과 리프트 동작은 그 어떤 사랑의 언어보다 이들의 사랑을 효과적으로 전달해 준다. 


◇충격적 결말, 비극적이라기보다는 잔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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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맨틱하거나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가 아니라 10대 청소년들의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와 고통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진=©Studio AL, LG아트센터

줄리엣이 로미오를 칼로 찔러서 살해하는 결말은 그 어떤 관객도 예측하지 못한 충격적인 장면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도 증오에 의한 살인이 아닌, 티볼트로 착각해 불안과 공포 속에서 저지르는 살인이라니! 극 초반 티볼트가 줄리엣을 성폭행하는 장면의 필요성 여부를 두고 이견이 많았는데 아마도 티볼트의 폭력적인 캐릭터와 행동은 이러한 결말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낸 것인 듯싶다. 

이 결말 장면은 원작과 달리 사랑의 서사가 아닌 폭력의 서사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맨틱하거나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가 아니라 10대 청소년들의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와 고통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튜 본의 최신작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인지 공연이 끝난 뒤 일부 실망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전 작품에 비해 발레의 비중이 적고 춤과 드라마가 밋밋하다는 지적이다. 

이 작품은 ‘레드 슈즈’(2016), ‘카 맨’(2000), ‘신데렐라’(1997) 등과 함께 2021년 3월 네이버TV LG아트센터 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 중계된 적이 있다. 

당시에도 다른 세 작품과 ‘로미오와 줄리엣’이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전의 작품들이 강렬한 욕망의 이미지를 자유롭고도 역동적인 춤으로 펼쳐 보인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러한 욕망이 극도로 통제되고 억압받는 부자유한 상황을 연출한다. 

그래서인지 단조로움, 미숙함, 부자유함과 같은 이미지들이 무대 전체를 지배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그것이 평이하거나 답답하다는 느낌을 안겨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암시되듯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10대들의 로맨스가 아닌 그들의 갈등과 고민을 담아낸 사회문제극을 창조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 공연은 다른 어느 작품보다 대중성이 강한 뮤지컬적 요소보다는 갈등이 살아 있는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춤으로 구성된 무대를 통해 사회적 문제의식을 날카롭고도 심도 있게 다루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미적 성취와 무관하게, 새로운 주제와 형식을 향해 도전하는 모습은 그 무엇보다 젊고 아름답다. 

 

 

백로라(연극평론가)/ 숭실대 교수,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부회장

 

 

복현명 기자 hmbok@dailysm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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