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뮤지컬 리뷰] 뮤지컬 ‘홍련’, 죄책감을 넘어선 듣기와 바라보기…‘참된 어른의 덕목’
[거침없이 뮤지컬 리뷰] 뮤지컬 ‘홍련’, 죄책감을 넘어선 듣기와 바라보기…‘참된 어른의 덕목’
  • 복현명
  • 승인 2024.09.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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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와 씻김굿에서 출발한 락 콘서트 뮤지컬 ‘홍련’(배시현 작·작사, 박신애 곡, 이준우 연출, 대학로 자유극장, 2024년 7월 30일~10월 20일)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설화와 씻김굿에서 출발한 락 콘서트 뮤지컬 ‘홍련’(배시현 작·작사, 박신애 곡, 이준우 연출, 대학로 자유극장, 2024년 7월 30일~10월 20일)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스마트경제] #. '거침없이 연극리뷰'가 스마트경제를 통해 매주 금요일에 새롭게 찾아간다. 이에 올해 하반기 연극, 뮤지컬 분야 평론가들이 거침없는 연극리뷰 시즌2를 연재한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주간이며 포스트드라마 권위자인 문학박사 김기란 평론가,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부회장이자 숭실대학교 교수 백로라 평론가, 월간 ‘한국연극’과 계간 ‘한국희곡’ 편집위원인 조훈성 평론가, '한반도 음악극’ 저자로 ‘연극평론’ 편집위원인 정명문 뮤지컬 평론가가 매주 릴레이로 연재할 예정이다. 

‘거침없이 연극리뷰’ 편집위원은 계간 ‘한국희곡’ 편집주간으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방위적인 연극평론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연극의 승부사들’, ‘동시대 연극 읽기’의 김건표 평론가(대경대학교 연기예술과 교수)가 맡고 있다(편집자주).

 

‘전통의 현대화’가 세계화의 한 면모로 인식되던 시기가 있었다. 

악기, 의상, 춤 같은 장르 결합부터 출발해 서사와 캐릭터에서 특정 요소만 가져와 현대적으로 재구성하기도 했고 내용과 형식 둘 다 담아내려던 방식도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시도들은 공연 당시 우리 관객들에겐 주목받았지만 다른 나라에서 공감받으려면 거쳐야 할 것들이 있음을 알게 한 계기도 됐다.

최근 대학로 소극장에는 외국 고전을 각색해 뮤지컬화 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익숙한 소재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글로컬리즘이 대세가 된 듯하다. 그 가운데 뮤지컬 ‘홍련’(배시현 작·작사, 박신애 곡, 이준우 연출, 대학로 자유극장, 2024년 7월 30일~10월 20일)은 독특한 행보를 보인다. 전통에서 출발했지만 고전 형식에 얽매여있지 않으며 예상치 못한 조합으로 지금의 관객에게 주목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경계를 넘나드는 시선과 설정   

홍련과 바리는 남아선호사상의 피해자란 점에서 닮았다.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홍련과 바리는 남아선호사상의 피해자란 점에서 닮았다.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홍련’에는 처녀 귀신의 원조 홍련과 죽은 자의 한을 풀어주는 바리 그리고 저승과 이승의 장면을 채워주는 차사들이 나온다. 

죽은 영혼이 심판받는 저승 천도정에서 홍련은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하, 의붓남동생을 해쳤다고 한다. 아울러 언니 장화를 죽인 이들에게 하늘이 벌을 내리지 않아 홍련이 대신 단죄한 것이니 무죄라 주장한다. 

망자들의 길잡이이자 위로의 신인 바리공주는 홍련이 죽은 1656년부터 초혼-고풀이-씻김-길닦음의 씻김을 관통하는 재판을 13만9998번째 진행했다.

바리와 저승 차사들은 홍련이 소멸되지 않고 다음 생으로 떠날 수 있길 바라기에 이야기를 들어주는 재판의 형식을 취했던 것이다. 

설화와 달리 저승에서 변론을 하는 홍련의 상황은 씻김과 콘서트라는 경계를 자연스레 넘나드는 중요한 설정이라 할 수 있다.

바리가 재판관이 되어 홍련의 ‘변론’을 듣는 설정은 씻김과 콘서트를 자연스레 넘나드는데 기여한다.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바리가 재판관이 되어 홍련의 ‘변론’을 듣는 설정은 씻김과 콘서트를 자연스레 넘나드는데 기여한다.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이 작품은 부모 잘못을 고발한 홍련과 효의 상징인 바리가 남아선호사상의 피해자란 점으로 을 동일한 지점이 있음을 짚어낸다. 

딸이기에 버려지고 방치된 이들은 필요성이 있어야만 관심을 받았고 목소리는 내지 못했다. 그간 바리와 홍련의 원작 결말 해석은 당대 가치관을 답습해  그들이 겪었던 사회구조적 오류는 들여다보지 않았다. 

뮤지컬 ‘홍련’은 바리와 홍련의 대화를 통해 과거의 상황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바리가 아버지를 위해 저승에 간 선택을 다르게 볼 수는 없는가? 홍련의 계모에게 내렸던 징벌은 왜 뮤지컬에서 나타나지 않았는가? 나에게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런 생산적인 고민은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에 의미가 생기게 된다. 


◇음악 구성의 현재성 

뮤지컬 ‘홍련’에는 14개의 넘버가 담겨있다. 길이가 긴 곡, 함께 부르는 곡 등 풍성한 곡 운영을 확인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곡에 활용되는 악기는 건반, 베이스, 기타, 드럼 위주의 전자음 위주이다. 여기에 곡에 따라 거문고 혹은 힙합 트랩 비트 등이 추가되면서 락과 랩, 국악 분위기가 이어진다. 

그 결과 작품의 문제를 삼고 있는 남아선호, 아동학대 및 방치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연속되고 있음을 음악과 악기로도 표현하게 된다. 

‘홍련’의 넘버에는 전자 악기 외에 거문고, 힙합 트랩비트 등이 추가되면서 락과 랩, 국악 분위기를 절묘히 담아낸다.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홍련’의 넘버에는 전자 악기 외에 거문고, 힙합 트랩비트 등이 추가되면서 락과 랩, 국악 분위기를 절묘히 담아낸다.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홍련은 컨버스를 신고 랩을 한다. 초반에는 중독적인 멜로디와 후크송으로 상처받고 비뚤어진 모습이 담겨있다면 넘버8 ‘버려진 소녀’부터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에 무너진 속내가드러나게 된다. 

16살 소녀는 담장 안에 갖혀 있었고 문제 상황을 노출하려면 죽는 수밖에 없었다. 

사랑받고 싶었던 홍련은 조용히 있으라는 말을 거역하지 못했고 언니가 학대받는 것을 방관했으며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이 상황은 낯설지 않다. 집안을 일으키고 유지하는 것은 장자의 몫이며 남자가 하는 일에 여자가 간섭하면 안 되고 이를 거부할 때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가부장적인 가치관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자가 피해자라면, 그 피해를 입증해야만 한다. 설화에서 출발했지만 이 불편하고 익숙한 고리들은 여전히 유지되는 부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시끄러운 전자음과 고음이 들어있는 노래들이 핸드마이크를 설치한 콘서트로 진행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과거와 지금이 크게 변하지 않았으니 지금의 음악 스타일로 과거와 현재의 연계를 확실히 나타낸 것이다. 영리한 전략이라하겠다.  


◇ 씻김과 심리치료의 무대 

홍련과 바리의 감정 변화를 드러내는 무대와 조명.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홍련과 바리의 감정 변화를 드러내는 무대와 조명.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소극장 뮤지컬은 무대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급격한 무대 변경은 어렵고 영상으로 변화를 주는 경우가 많다. 

‘홍련’의 경우 천도정이란 상상의 공간을 유기적으로 보이도록 조명을 활용했다. 

정면 뒷부분에는 붉은 줄에 묶인 거대한 원형 고리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보이게 된다. 정면 벽에는 작은 등과 단순화된 선으로 삼도천을 보여준다. 

바닥은 35개 정도의 셀 각각에 다른 무늬를 조합해 게임판처럼 캐릭터 위치를 표시하고 홍련과 바리의 급격한 감정 변화의 흐름을 캐치할 수 있도록 했다. 

무대 소품 중 오라, 빨간 실 등은 홍련의 답답한 상황을 강조하며 가볍게 풀리는 마지막 장면으로 인해 치유의 가능성도 제시하게 된다. 하얀 천과 무구는 정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방관을 넘어 자존감 획득까지     

홍련의 비명과 바리의 듣기.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홍련의 비명과 바리의 듣기.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극의 시작, 어린 소녀는 자신의 비명은 안 들린대도 양반인 아버지가 지른 비명은 멀리까지 들릴 것이라며 듣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양반집 여인의 죽음은 지저분한 소문에서 멈추지만 양반의 죽음은 원인을 공식적으로 규명할 것이라는 믿음은 사회구조의 권력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지금도 힘을 가진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죽음의 주목 여부는 다르기 때문이다. 

홍련을 직접 학대했던 대상은 계모이지만 계모가 악행을 벌일 수 있었던 구조는 아버지의 방관 때문이었다. 
그는 말 한마디면 학대를 멈출 수 있는 위치였음에도 친자식을 보호하지 않았다. 그러니 친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클 수밖에 없다. 

홍련의 기억 오류는 사랑으로 치유되어야 한다.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홍련의 기억 오류는 사랑으로 치유되어야 한다.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극의 초반 홍련의 반항적인 태도는 폭력의 피해자들이 방어기제로 과한 감정 표현을 행동화것으로 보인다. 

아동학대, 방임, 유기처럼 아동에게 가해지는 범죄는 또 다른 문제의 출발이 될 수 있기에 참담하다. 아이의 탄생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다. 그러니 그들은 세상에 나아가기까지 적정한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한다. 

살고 싶어 언니를 방패삼고 방관자가 되었던 과거가 죄책감이 되어 자신의 삶을 좀 먹는 피폐한 홍련의 모습은 지금의 관객들에게 자기 연민과 위로를 생각하게 한다. 자신의 방관이 그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누군가 토닥여 주었다면 혹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이가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설화의 결말은 계모가 벌을 받고 아비와 자매는 부녀의 연을 다시 잇게 된다. 

뮤지컬 홍련에는 계모의 결말은 나오지 않는다. 또한 그녀의 재판은 죄책감으로 인한 망상이었다. 

홍련이 죄책감에 미쳐서 기억을 조작하고 삼도천 건너지 못한다. 그리고 홍련이 기억을 되찾으려 할 때마다 불안정하게 나던 방울 소리들은 그 편린을 보여준다. 

홍련의 기억 오류와 아픔을 감싸안는 모습에서 이 작품은 사랑의 필요성을 다시금 전달한다. 홍련이 실제로는 살인을 한 게 아니라는 결말은 피해자가 그 경험으로 또 다른 가해자가 되지 않았고 피해자한테 집중해서 앞으로 한발 나아갈 수 있는 결말이란 점에서 지지를 받게 된다.

‘장화홍련’의 홍련은 17살에 죽었고 ‘바리데기’의 바리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간 때는 16살이다. 

어른은 작든 크든 경험을 먼저 한 이들이기에 함께 살아가기 위해 어린 아이의 부담을 지워줘야 한다. 

홍련이나 바리는 둘 다 복수를 선택했지만 그 근원에는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있음을 알게 된다. 들어주고 나누고 공감하는 경험이 부족했던 홍련은 바리의 씻김굿 이후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반자를 경험하면서 치유하게 된다.


◇온전히 듣고 보는 동반자의 필요성      

여자가 주인공이되 ‘성별’에 갖히지 않고 인간 보편의 이야기가 되도록 만들기는 쉽지 않다. ‘홍련’은 굿을 빌어 소외됐던 이들의 공감과 치유를 보여준다. 홍련과 바리가 만나 각자의 삶에 공감하고 연대해서 자신의 아픔을 인정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공연이 진행되는 90분 동안 퇴장하는 배우들 없이 계속 무대를 지키면서 목소리를 내고 들어주는 이들이 다 함께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배우들의 대사와 넘버와 연출까지 확실하게 방점을 찍는 작품이라 하겠다. 

이 작품은 누군가를 온전히 바라보는 시도 자체를 사랑이라고 정의한다. 

방식은 각자 다를 수 있어도 끝까지 기다려주는 이들로부터 다음을 생각하는 힘도 찾을 수 있다. 홍련은 원작과 달리 죄책감에 시달려 결국 망상의 상황까지 가게 된다. 온 힘을 다해 힘써주는 바리와 차사들의 기다림으로 인해 홍련의 한도 바리의 지워버렸던 한도 풀 수 있었다. 

재판 형식의 락뮤지컬 형태는 대학로 뮤지컬의 다양성을 넓히는데 기억할 만한 성과이다. 

 

정명문(뮤지컬평론가)/ 고려대 강사. ‘연극평론’, ‘한국연극’ 편집위원. ‘한반도 음악극’ 저자

 

 

복현명 기자 hmbok@dailysm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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