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은 관련 법규 정비…한국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스마트경제 이덕행 기자] 자율주행자동차 사고가 잇따르면서 책임 소재 공방도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달 23일(미국시간) 테슬라의 신형 스포츠유틸리티 '모델X' 차량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고속도로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차량은 중앙분리대와 충돌한 직후 다른 차량 2대와 연쇄 충돌한 뒤 폭발했으며, 운전자 웨이 황(38)은 사고로 사망했다.
30일 테슬라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차량의 컴퓨터 로그를 복원·분석한 결과, 차량이 충돌 직전 자율주행 모드가 켜져있었다고 발표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차 사망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6년에는 테슬라 '모델S' 차량이 미국 플로리다에서 도로를 가로지르는 트레일러 차량과 충돌해 운전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 사건은 비단 테슬라 차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테슬라의 차량사고에 앞서 지난달 18일 미국 애리조나주에서는 우버가 시험 운전 중이던 볼보 XC90 자율주행 차량이 무단 횡단하는 보행자를 치어 사망에 이르게한 사고가 발생했다.
▲ 아직 불완전한 자율주행차, '운전자vs제조사' 책임 논란 대두
자율주행차의 상용화가 눈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자율주행차량이 일으킨 사고의 책임을 누가 져야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은 관련 법률을 정비하며 명확한 규정을 만들고 있다.
현재 자율주행차의 개발 수준은 '레벨3' 단계(운전자가 있는 상태에서 조건부로 자율주행하는 단계)에서 '레벨4'(운전자의 개입 없이도 자율주행이 가능한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의 선진국은 운전자에게 책임을 묻는 쪽으로 관련 법규를 제정하고 있다. 미국 미시간주는 2016년 12월 시스템 결함으로 인한 사고 시 자동차 제조업자가 손해배상을 부담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지난달 30일 '자율주행 관련 제도 정비 개요'를 통해 운전자의 책임을 명시했다. 개정안 초안에 따르며 '레벨3' 단계까지의 자율 주행에 대해서는 운전자가 원칙적으로 배상 책임을 진다. '레벨4' 이후의 배상 책임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 하기로 했다.
독일의 경우 자율주행 수준과 상관없이 사고 책임 대부분을 차량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지도록 했다. 단, 법 개정을 통해 자율주행차량에 블랙박스 설치를 의무화했다. 사고 발생시 블랙박스를 분석해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제조사가 책임을 진다.
현재 법규는 운전자가 명확한 만큼 운전자에게 책임을 묻지만, 운전자가 모호해지는 '레벨4' 이후의 자율주행차량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완전 자율주행 차량의 사고는 결국 차량의 결함이기 때문에 차량 제조사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자율주행차량을 구입하고 나면 그 후의 관리 책임은 소유자에게 있다는 의견도 있다.
▲ '2020 자율주행차 상용화'외친 한국, 책임 논의는 제자리 걸음
이처럼 많은 국가들이 자율주행차의 책임과 관련한 논의를 시작한 가운데 한국은 자율주행차의 사고 책임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지난 2월 '도로교통법 개정안'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개정안'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등을 발의하며 자율주행차 운전 수칙과 사고 처리 기준을 명시했지만 아직 소관위의 문턱도 넘지 못한 상황이다.
현재 국토교통부가 레벨3 이상 자율주행차의 임시 운행 허가를 내주고 있는 상황인 만큼 당장 사고가 발생하면 법적인 사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2020년 운전자 탑승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외친 정부는 관련 법안 정비보다 국내에서 시험 운행 중인 자율주행차의 안전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7일 "우리나라는 자율주행에 필요한 성능을 실제로 검증한 후 허가한다"며 "자율주행차 임시운행허가제도를 도입한 이래 허가받은 자율주행차는 총 44대이며 아직까지 교통사고에 개입된적은 없다"는 참고자료만을 내놓았다.
또한 30일에는 자율주행차를 시험중인 18개 업체·대학 등과 간담회를 갖고 철저한 안전관리를 당부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2월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인공지능 시대에는 기존에 없던 다양한 책임법제 쟁점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 된다. 자율주행차에 맞는 새로운 규범 체계에 대한 준비가 시급하다"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술이 확산됨에 있어 큰 제약을 받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4차 산업 시대를 이끌 자율주행차의 상용화가 눈앞으로 다가온 만큼, 관련 제도의 정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지고 있다.
dh.lee@dailysmart.co.kr / 사진 = 테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