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노벨‘은 최근 몇 년 새 급부상하고 있는 소설 장르다. 최근 몇 년간 눈에 띄는 성장률을 보이더니, 어느새 국내 도서 시장의 5~6%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높아진 영향력을 대변하듯 국내 최대규모의 도서전에서 라이트 노벨 관련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강연 뒤에는 라이트 노벨 작가 지망생들의 질문이 쏟아지기도 했다.
23일 오후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2018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라이트 노벨, 한 번 읽어보지 않겠어요?'라는 주제로 강연이 진행됐다.
라이트 노벨에 대한 이해와 논의 과정 필요 - 선정우 칼럼니스트
이날 선정우 만화 칼럼니스트는 '라이트 노벨 장르에 대한 역사와 개관'을 주제로 강연했다.
선 칼럼니스트는 '일본내 10대 중고생이 많이 읽는 소설의 한 장르로서 만화 애니 풍의 일러스트를 사용하는 오락 소설'으로 라이트 노벨을 정의했다.
그는 "'라이트 노벨'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라고 설명했다. 선 칼럼니스트는 "영어로 돼 있지만, 정확히는 일본식 영어로 봐야 한다며 '라이트 노블'보다 '라이트 노벨'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 그 영향"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에선 '장르 소설', 또는 '웹 소설'이라는 포괄적 용어로 라이트 노벨을 포함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 업체는 웹소설의 하위 카테고리에 무협, 판타지, 로맨스와 함께 라이트 노벨을 넣기도 했다.
선 칼럼니스트는 "라이트 노벨 중에도 SF, 판타지, 로맨스, 학원 물 등 다양한 장르가 포함돼 있으며 일러스트가 꼭 만화풍이 아니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며 "특정한 장르나 형식에 구애되기 보다 스스로 '라이트 노벨'을 표방한 소설을 '라이트 노벨'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라이트 노벨이 국내 출판계에서 가진 영향에 비해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소드 아트 온라인'이 국내에 100만 부 가까이 팔렸는데 외부적으로는 언급이 잘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국내에서 라이트 노벨을 언급할 때 흔히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 등을 대표작으로 꼽는데 이는 실제 많이 팔린 작품보다 영상화된 작품을 언급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선 칼럼니스트는 "라이트 노벨은 학문적 연구 비평 대상으로 다뤄진 역사가 길지 않아 명확한 기준이 없다"며 "이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 명확한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웹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어졌다. 선 칼럼니스트는 웹소설(인터넷 상에서 연재되는 소설) 분야에 대해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앞서있다고 봤다. 일본의 대표적 웹소설 사이트 '소설가가 되자'는 한국의 '조아라', '문피아'보다 개설 시기가 늦다. 선 칼럼니스트는 "일본에서 2014년에 나온 '웹소설의 충격'이라는 비평서는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웹소설이라는 장르가 일본에서 어떻게 시장에 진입할지 논의하자'는 전제를 깔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소설가가 되자', 'E☆ 에브리스타' 등의 플랫폼을 통해 웹소설이 꾸준히 연재되고 있다.
선 칼럼니스트는 "일본의 인터넷 소설은 우익·혐한 쪽과 연결이 있다는 점도 논의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라며 “때문에 일본의 인기 웹소설 '마법과 고교의 열등생'은 국내에 출간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경우 거대한 웹소설 시장이 형성돼 있다. 텐센트의 '열문그룹' 사이트의 경우 작가 640만명, 연재 작품수 1000만을 보유하고 있으며 2016년 기준으로 회원 수가 6억명에 달한다. 인기작은 누적 인세 수입만 1억1000만 위안(약 188억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 칼럼니스트는 "아직까지 국내에서 화제가 된 중국 웹소설은 많지 않으나, 국내 또는 현지에서 드라마 화 된 '보보경심려', '삼생삼세십리도화' 등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선 칼럼니스트는 국내 라이트 노벨 시장에 대해 "최근 라이트노벨 전문 출판사가 생기고 한국형 라이트 노벨을 만들고 싶어하는 작가가 많이 등장하는 등 자체적 발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전망했다.
내가 라이트 노벨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 - 이상원 작가
'맑은 날 오후'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인 이상원 작가는 '독자에서 창작자가 되기까지 인생 이야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 작가는 학창 시절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문자만 가득한 것이 교과서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교 시절 친구의 권유로 라이트 노벨을 접한 뒤 푹 빠지게 된다.
라이트 노벨을 좋아하긴 했으나, 자신이 작가가 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대학 시절 그는 게임 회사 취업을 목표로 3D 모델링 전공을 공부에 몰두해 있었다.
전공 공부로 바쁜 대학교 4학년,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얻은 영감으로 '철수와 영희'라는 작품을 써보게 된다. 이 작품은 시드노벨의 공모전에서 1·2차 심사를 통과하고 본선까지 진출했다.
자신에게서 작가의 재능을 발견한 이 작가는 교수님,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취업을 포기하고 작가 도전을 결심했다. 공모전 입상을 목표로 차기작 집필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후 쓴 소설은 줄줄이 심사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시게 된다. 작가 등단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다. 대학 동기들이 넥슨, 엔씨소프트 등의 좋은 회사에 취업하는 동안, 자신은 아르바이트와 소설 쓰기라는 단순한 일과만 반복해야 했다.
이 작가는 "이때의 실패를 계기로 자기만족 식 소설을 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독자들이 만족하는 소설을 써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후 이 작가는 1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하나의 소설을 기획했고, 결국 이 작품이 2012년 시드 노벨 공모전 대상 1위를 차지했다. 편집 과정 등을 거쳐 11개월 뒤 책을 출간하게 됐다.
그가 출간한 라이트 노벨 제목은 '용사와 마왕을 무찌를 때 우리들도 있었다'로, 줄여서 '용마무우'로 불린다. 이 작가는 제목을 먼저 생각하고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는 '소설을 한 줄 요약했을 때 재미있으면 그 소설은 재미있는 것'이라는 다른 작가의 말을 감명 깊게 들었고, 그것을 실천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작가는 "독자로서 꿈만 꾸던 작가가 되었고, 오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독자님'들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소설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애 캐릭터’ 현상이 불러온 라이트 노벨 열풍 - 주성민 대표
블랙시드 엔터테인먼트 주성민 대표는 '라이트 노벨'을 읽는 독자들은 누구인가? 왜 라이트 노벨에 열광하는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캐릭터 성을 라이트 노벨의 첫째 인기 요인으로 꼽았다. 특히 '최애(最愛) 캐릭터'라는 말이 라이트 노벨에 열광하는 독자들의 심리를 대변한다고 봤다.
최애 캐릭터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애호하는 캐릭터라는 의미의 인터넷 신조어다. 주 대표는 인기 게임 '아이돌마스터'의 여성 캐릭터의 생일을 축하하는 한 네티즌의 모습을 소개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 앞에 생일 케이크를 두고 캐릭터 굿즈를 잔뜩 쌓아 둔 모습이었다.
주 대표는 "라이트 노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캐릭터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자들은 최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의 증명으로 굿즈를 사고 싶어하는 수집욕이 강하다는 것이다. 라이트 노벨은 초판본의 판매량이 특히 많은데, 이는 초판본에 캐릭터의 굿즈를 부록으로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 대표는 "최애 캐릭터를 통해 사람들은 라이트 노벨을 좋아하게 되고, 굿즈를 모으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소녀 캐릭터'로 표현되는 캐릭터의 외형, 매력 있는 성격 및 설정을 들었다. 일본은 캐릭터의 특징을 생략·과장·변형시켜서 심볼화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캐릭터의 이미지를 강하게 인식시킨다. 가령 동인 게임 '동방 프로젝트'의 모리야 스와코는 토속신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그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개구리 눈이 붙은 모자를 쓰고, 개구리 무늬 옷을 입고 있다.
주 대표가 밝힌 최애 캐릭터 현상을 일으키는 '캐릭터의 공감 3단계'는 다음과 같다.
1.캐릭터의 특징이 이야기와 일러스트로 심볼화 돼 표현된다. 독자가 중층적으로 캐릭터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2.상상을 바탕으로 캐릭터의 심리를 추리하고 이해하면서 그 캐릭터에 관한 관심과 애정이 생겨난다.
3.그 캐릭터의 조형, 매력적인 약점 등에 독자가 감정을 이입한다. 그 독자의 최애 캐릭터가 된다.
라이트 노벨의 또 다른 인기 요소는 캐릭터의 '핍진성(현실적 상황과 흡사한 정도)'이다. 주 대표는 "라이트 노벨의 캐릭터는 청춘 소설을 통해 핍진성이 부여됐다"고 설명한다. '데미안', '죽은 시인의 사회', '호밀밭의 파수꾼' 등의 청춘 소설은 청년들이 학교나 어른들에게서 배우는 이상과 자신이 부딪히는 현실의 괴리감을 핍진성 있게 다루고 있다. 라이트 노벨은 이러한 청춘 소설의 핍진성을 차용했다.
주 대표는 "라이트 노벨의 엔터테인먼트적 파급성은 '핍진성'에 '미소녀 캐릭터'가 더해져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를 예로 들었다. 이 작품에는 학교에서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는 스즈미야 하루히가' 이세계(異世界)에서 초능력자를 창조할 수 있다는 설정이 존재한다. 어른들이 망상으로 치부하는 우주인·미래인·초능력자 등을 '현실'로 설정해 핍진성을 부여했다. 학교에서는 아웃사이더인 그녀의 활약상, 그리고 그 캐릭터 성으로 인해 '미소녀성'이 부여됐다는 것이다. 주 대표는 "이 작품으로 부터 라이트 노벨 엔터테인먼트가 대중화됐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핍진성의 부여 수단이 청춘 소설에서 이세계물(현실속 인물이 판타지 세계로 이동해 펼치는 이야기)로 이동했다. 핍진성이 있는 이세계(현실과 다른 세계)에서 캐릭터가 치트(비상식적으로 강력한)적인 능력을 얻어서 활약하는 내용이다. 주 대표는 "모바일로 접속해서 로그인하고 소설을 보는 과정 자체가, 일종의 이세계물과 같은 느낌을 준다. 독자들이 이세계물에서 핍진성을 강하게 느끼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라이트 노벨은 '미디어 프랜차이즈'에 유리하다. 스토리와 캐릭터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여러 매체로 옮겨 가기 쉽다는 것이다. 주 대표는 "원작이 2차 미디어 프랜차이즈화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축제'와 같은 붐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작품이 다수의 미디어를 통해 등장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또한, 소설에서 만화·애니메이션 등의 매체에 맞게 개량·구체화 되면서 캐릭터에 새로운 핍진성이 부여된다. 주 대표는 "라이트 노벨이 독자를 견인하는 힘은 미디어 프랜차이즈에서 온다"고 설명했다.
주 대표는 "한국에서도 라이트 노벨이 창작되고 있으나, 아직은 도서의 출판 개념에 그치고 있다. 비용 등의 문제로 미디어 프렌차이즈도 쉽지 않다"면서도 "일본보다 웹소설의 역사가 길고, 유료화 환경도 잘 갖춰져 있다. 한국만의 라이트 노벨 핍진성을 갖춘 작품이 나온다면 더 큰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백종모 기자 phanta@dailysma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