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론머스크에서 왓츠앱 창업자까지, 페이스북 삭제운동 나서
[편집자 주]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전면화로 인해 지난 100년 동안 익숙했던 미디어 환경이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 사업자와 넷플릭스, 아마존 등 신규 콘텐트 사업자들이 수 억명의 회원을 거느리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이 와중에 기성 신문, 방송, 매거진 사업자는 생존과 나락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다. 미디어 산업은 본질적으로 오락과 여가적 속성이 강하지만,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언론산업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미디어혁명이 세상 어느 한 곳 영향을 미치지 않는 데가 없는 이유다. 이와 같은 미디어빅뱅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있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하재식 교수가 스마트경제에 미디어산업 현장 칼럼을 연재한다.
페이스북에서 인간은 쥐와 같은 실험 대상
“페이스북은 역사상 최고의 인간 실험실이다. 실험 참가자에게 귀찮게 동의서를 받을 필요가 없다. 이용자들이 가입 때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페북에 소속된 과학자들은 소설네트워크를 통해 인간행동을 연구하고자 끊임없이 각종 실험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과학이란 이름 아래 우리에 대해 심리 실험을 하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가?”
2014년 6월,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이처럼 페이스북(페북)을 향해 다소 공격적인 기사를 실었다. 페북이 2012년 1월 일주일 동안 진행한 실험에 대한 얘기다. 가입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가운데 70만 명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에는 귀여운 아기 사진 등 아주 긍정적인 내용의 포스팅을 올리고, 또 다른 그룹에는 죽은 개 사진 등 부정적인 내용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실험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상태가 소설네트워크에 올라오는 글이나 사진, 동영상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는 지를 발견하는 게 그 연구의 목적이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이지만, 그 연구를 통해 “인간 감정은 전염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연구팀은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부정적인 내용이 페북의 사이트에 많이 올라오면 이용자들이 부정적인 감정표현을 자주 한 반면 긍정적인 내용이 올라오면 더욱 긍정적인 감정표현을 더 많이 해나갔다는 것이다. 포브스는 “페북은 이번 실험이 내포한 감정 조작의 비윤리성에 둔감하다”고 꼬집었지만, 실제 당사자인 페북 측에선 “이번 실험은 이용자에게 더욱 매력적이고,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서비스를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자사를 옹호하기에 바빴다. 특히 “실험 과정에서 불필요한 개인정보 수집도 없었고, 데이터는 안전하게 저장, 관리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페북의 개인정보 관리와 비윤리적 사업방식을 둘러싼 논란은 그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페북에서 인간은 쥐와 같은 실험 대상이다”라거나 “페북은 돈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기업철학을 갖고 있다”는 것이 페북을 향한 논란과 비난의 요지다.
'회원 정보 유출' 페이스북, 창사 이래 최대 위기
그리고 최근,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소셜미디어의 ‘제국’이라 불리는 페북이 창업 14년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3월16일 금요일 저녁, 페북이 갑작스럽게 회사 블로그에 올린 글이 신호탄이었다. “영국의 컨설팅 회사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CA)가 무단으로 페북 가입자 5천만 명의 개인정보를 입수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트럼프 후보를 위한 선거운동에 활용했다. 따라서 이 회사의 페북 서비스 이용을 중단한다”는 발표였다. 이는 CA 정보유출 사건에 대한 특종 취재를 진행해 온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영국의 가디언이 다음날 보도할 것을 예상한 페북 측의 선제적 조치였다. 하지만 불을 끄기 위한 페북의 위기관리 조치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실제 “허리케인이 페북을 초토화시켰다”는 와이어드 매거진의 기사 제목처럼 페북 안팎에선 난리가 벌어졌다. 월요일 주식시장이 문을 연 뒤 ‘정보유출’의 여파로 페북의 주가는 7% 가까이 폭락한 것을 비롯해 한주 동안 모두 14% 떨어졌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한주에 750억달러(한화 약 81조원)가 날라갔다. 대서양을 마주보고 있는 미국과 영국의 의회가 “페북 경영진을 불러 이번 사건을 파헤치겠다. 페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이 사태를 설명할 의무가 있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 뿐만 아니라 미국 메사추세츠주 등이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설상가상으로 언론들은 “페북을 탈퇴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며 후속 기사를 앞다퉈 쏟아냈다. 5일간 행방이 묘연한 채 침묵했던 마크 저커버그는 21일 페북에 올린 글에서 “우리는 실수를 했다. 당신의 데이터를 보호하는 데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페북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앱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페북 덩치 키운 개방형 플랫폼, 개인정보 보호 어렵게 만들어
과연 페북이 가입자의 신뢰를 되찾고 이번 사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고, 페북이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만만치 않다. 이번 위기가 광고수입 중심의 사업모델과 안이한 위기대처에 의해 증폭됐다는 이유에서다.
우선 페북이 주도하고, 창출한 소설미디어 생태계가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졌다는 평가다. 페북은 2004년 출범 이후 맞춤형 광고를 통한 매출 확대를 위해 ‘페북 세상’의 덩치를 키우는 ‘확장’ 전략을 채택했다. 페북 중심의 미디어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마크의 야심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특히 페북이 추진한 ‘개방형 플랫폼’이 화근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이번 사태의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당시 페북을 개방형 플랫폼으로 만들어 외부 개발자들이 페북을 기반으로 한 앱과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허용해 개인정보 보호를 더욱 어렵게 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당시 마크가 한 저널리스트에게 “페북을 운영체제 같은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 일화를 소개했다.
개방형 플랫폼 전략은 당시에 큰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페북에 큰 변화를 낳았다. 앱 개발자들이 페북과 연동되는 앱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페북의 인기게임 ‘팜빌’이 출시됐고, 틴더, 스포티파이 등 인기 앱들도 이루 셀 수 없이 시장에 선을 보였다. 또한 페북은 온라인 지배력을 키우고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외부 앱들을 이용할 때 페북 ID와 패스워드만 있으면 자동으로 로그인이 가능하게 했다. 이로써 페북은 가입자의 온라인 생활에 깊숙이 침투할 수 있었고, 외부 앱 개발자들도 더욱 큰 소셜미디어 시장에 접근해 페북 가입자 정보를 확보했다. 양측에 ‘윈-윈’ 게임으로 보였다. 그야말로 ‘페북 제국’이 틀을 갖춘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페북 이용자들에게 앱들은 유용해 보였고, 무해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이들 앱은 페북 회원의 사생활 데이터를 마구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당시엔 페북의 자유방임주의적 정책이 가져올 해악을 상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것이 당신의 디지털 생활이다'라는 심리분석앱에서 발화
실제 이번 CA 정보 유출사건은 2014년에 시작됐다. 2014년 캠브릿지대학의 알렉산드르 코간 교수는 성격 검사를 해주는 앱인 ‘이것이 당신의 디지털 생활이다(thisisyourdigitallife)’를 개발했다. 이후 그는 이 앱을 다운로드한 뒤 검사에 참여한 페북 가입자 27만명과 그들의 페북 친구 등 모두 5천만명의 개인정보를 취득했다. 이용자의 나이, 거주지역, 방문한 인터넷 페이지, 소속된 그룹 등 광범위한 정보가 포함됐다. 여기까지는 모든 게 합법이었다.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다. 코간 교수가 이용자 정보를 CA에 넘긴 것. 앱 개발자가 페북 이용자 정보를 제3자에게 팔거나, 넘기는 것을 금지하는 페북의 정책을 어긴 것이었다. CA는 미국 공화당의 거물 기부자인 로버트 머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지낸 스티브 배넌과 함께 만든 정치컨설팅 회사다. CA 측은 2016년 트럼프의 선거운동 때 미국 유권자의 표심과 투표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자 이들 정보를 활용했다. 예컨대 어떤 광고가 트럼프의 당선에 도움이 될지, 어떤 메시지를 내보내야 유권자가 표심을 바꿀지 등을 연구하고, 직접 실행하는 데 페북 회원정보를 쓴 것이다. 특히 CA는 여러 외국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고자 뇌물을 전달하고, 미인계를 쓰고, 가짜뉴스를 전파하는 등 소위 ‘더러운’ 기술을 쓰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페북은 일찍이 이번 사건을 인지했지만, 이들 정보를 삭제했다는 CA 측의 말을 믿고 쉬쉬하다가 화근을 키운 셈이 됐다.
러시아 미 대선 개입, 페이스북의 또다른 아킬레스건
페북은 “이번 사태는 데이터 유출 사건이 아니다. 페북 시스템에 어떤 침투도 없었고, 개인정보가 해킹된 것도 아니다”고 진화하고 나섰지만 “페북 탈퇴”를 촉구하는 온라인 운동까지 불러일으키며 페북의 위기는 확산일로다. 예컨대 2014년 세계 최대의 메신저 ‘왓츠앱’을 190억달러에 페북에 판 브라이언 액튼 ‘왓츠앱’ 공동설립자는 지난 20일 트위터를 통해 “지금이 페북을 떠날 때”라며 해시태그 ‘페북을 삭제하라(#deletefacebook)’를 달았다. 테슬라,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 엘론 머스크도 23일 자사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삭제했다. 한 인터넷 이용자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페북 플랫폼은 약탈적 행동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 더 이상 이 플랫폼을 신뢰할 수 없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한 전문가는 “어떤 정보가 수집되고 있는지에 대한 감독이 철저하지 않고, 투명성이 결여된 것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플랫폼이 악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며 유사한 사건이 재발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또 다른 페북의 아킬레스건은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개입 사건이다. 러시아는 당시 조직적으로 트럼프 후보를 돕고자 가짜 계정이나 페이지를 통해 페북에서 정치성향을 띤 광고를 마구 퍼뜨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페북의 최고보안책임자 알렉스 스타모스는 “러시아가 운영한 가짜 페이스북 계정이나 페이지 470여 개를 찾아냈다”며 “정치 성향의 이들 광고는 2015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3000여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특히 광고들은 인종, 동성애, 총기 소유, 이민 등 민감한 정치적 이슈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사실상 러시아 정부가 미국 대선에 개입하고, 여론조작을 하는 데 페북을 주요 통로로 이용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페북은 이번 사태를 조기에 발견해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데 소홀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페북 최고보안책임자 스타모스는 러시아의 대선개입과 관련한 내부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는 데 적극적이었지만 다른 페북 경영진은 이를 숨기기에 바빴다”며 “이로 인한 내부 불화로 스타모스가 올 8월 페북을 떠난다”고 보도했다. 스타모스는 힐러리 클린턴을 대선 후보로 지명한 미국 민주당이 러시아 해커들에 의해 공격당했다고 발표한 2016년 6월 페북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조사하고자 팀을 가동시켰다. 이에 따라 이 팀은 같은 해 11월, 러시아 요원들이 페북에서 가짜 정보를 전파시키는 등 선거전을 진행했음을 밝혀냈다. 하지만 마크는 당시 “가짜뉴스가 2016년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아주 미친 아이디어”라며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월 이용자 22억명' 맞춤형 광고 모델 위기
더욱 심각한 것은 이번 정보유출 사건이 페북의 사업모델 때문에 일회성 위기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다. 페북의 사업모델은 페북 이용자들의 고객 정보를 기반으로 한다. 회원 정보를 기업이나 광고주에게 판매한 뒤 이뤄지는 맞춤형 광고가 페북의 주된 수익원이다. 2017년 페북의 매출은 406억달러를 기록했다. 이중 순익은 159억달러로 소설미디어 중 압도적 1위였다. 성장세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2007년 매출은 고작 1억5천만 달러였다.
매출의 압도적 기반은 22억명(월 이용자 기준)의 가입자다. 페북에 가입하면,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예컨대 ‘친구 맺기’를 하고, 뉴스, 동영상, 사진, 텍스트 메시지 등을 이용하고 즐길 수 있다. 일종의 공짜 서비스다. 그렇다고, 대가가 없는 게 아니다. 일종의 거래처럼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신 이용자는 개인정보를 페북이 이용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페북은 먼지를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처럼 회원들의 위치, 친구, 좋아하는 사진 및 동영상, 성별 등 온갖 정보를 확보한 뒤 이를 광고주에게 판다. 이용자가 늘수록, 이용자가 페북을 적극적으로 이용할수록 페북이 더 많은 돈을 버는 구조다. 또한 페북은 왓츠앱 뿐만 아니라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하는 플랫폼인 ‘인스타그램’까지 보유하고 있다. 왓츠앱과 인스타그램은 각각 월 이용자 기준으로 15억명과 8억명의 회원을 갖고 있다.
시험대에 오른 페이스북의 야망
페북은 이미 소설미디어 업계의 최고봉이다. 경쟁업체가 쉽게 넘볼 수 없는 위상을 갖고 있다. 페북이 이용자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인간관계를 유지해 주는 주요 통로가 되다 보니 이용자들 입장에선 결정적인 계기나 확고한 의지가 없고선 페북을 떠나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사생활과 개인정보 노출에 대한 우려에도 페북이 아직까지 건재한 이유다.
마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객과의 신뢰를 강조해 왔다. 그는 최근 페북 탈퇴운동과 관련, “아직까지 걱정을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페북 탈퇴를 결행하고 있지는 않다”며 “하지만 이번 사건을 ‘신뢰’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가 페북과 사업제휴를 한 수천 개의 앱들이 얼마나 페북 가입자 정보를 가져갔는지, 이를 어떻게 관리했는지에 대한 조사를 실효성 있게 진행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또 다른 CA 사건이 언제 터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마크가 꿈꿨던 세상, 즉 세계 공동체를 건설하고, 사람들을 가깝게 모이게 하겠다는 그의 목표는 분명 시험대에 올랐다. 또한 페북이 광고 기반의 수익모델을 계속 유지할지, 아니면 신문이나 넷플릭스의 구독료처럼 페북 가입자에게 매달 일정액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독 모델 (subscription model)’을 채택할 지도 관심거리다. 실제 마크는 최근 “의미있는 콘텐트를 생산해 인기를 끄는 회원들에 한해 그들의 페북 사이트에 접속하는 이용자들에게 매달 5달러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할지 실험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과연 페북은 개인정보 유출, 가짜뉴스 확산, 외국정부의 선거개입의 주요 창구라는 오명을 벗고 소설미디어 제국의 위상을 지켜낼 수 있을까. 세상의 중심의 되겠다는 페북의 야심이 헛된 욕망일까, 아니면 세상을 바꾸는 비전이 될 수 있을까. 페북이 미디어빅뱅의 중심에서 어떤 활로를 찾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하재식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angelha7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