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경제] #. 올해에도 '거침없이 연극리뷰'가 스마트경제를 통해 매주 금요일에 연극, 뮤지컬 분야 평론가들의 거침없는 연극리뷰 시즌3를 연재한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주간이며 포스트드라마 권위자인 문학박사 김기란 평론가, 연극평론가 숭실대학교 백로라 교수, ‘한 줄도 좋다, 우리 희곡’의 저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교양학부 객원교수 정수진 평론가, 전방위적인 비평과 연극평론을 하고 있는 대경대 연기예술과(연극영화과) 교수 김건표 평론가가 매주 릴레이로 연재한다(편집자주).
헨리크 입센의 19세기 희곡 '헤다 가블러 (Hedda Gabler, 1890)'의 전성시대다.
국립극단에서는 2012년 국내 초연 이후 13년 만에 무대에 오르는 배우 이혜영의 '헤다 가블러'가 6월 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고 있고 국민 대장금에서 32년만에 연극무대에서 데뷔전을 치른 이영애의 '헤다가블러'(LG아트센터)는 8일까지 공연되고 있다.
무대에서도 친숙한 배우 이혜영과 산소같은 미인(여자)의 대명사가 된 배우 이영애의 '헤다가블러'가 올해 상반기 시즌 약속이라도 한 듯 동일 작품으로 격돌하고 있다.
두 배우 다 티켓 파워 1라운드 에서는 무승부 느낌이다. 명동예술극장도 마곡동 LG아트센터도 평일공연도 매진 분위기다.
작품을 LG아트센터의 '헤다가블러'로 돌려보자.
프로시니엄 무대 구조를 체질적으로 거부하는 전인철 연출 특유의 무대위에서 포개졌다.
그 평면에서 개방되는 연출적인 장치(TV 화면처럼 헤다의 내면과 헤다를 둘러싸고 있는 엘레레트, 브라크 판사, 테아의 관계를 분할하는 영상, 디오니소스 액자, 그림자(극) 활용, 헤다와 동일화되는 가정부와 헬륨 풍선, 거실 구조가 설치미술처럼 무대 전면으로 널려 있는 오브제, 그리고 시간과 장면의 흐름을 한 시퀀스로 배치하는 구도 설정)은 '나는 살인자입니다',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날아가 버린 새', '고목', '구미식' 등에서 보여준 전인철 연출 스타일이다.
◇ 전인철의 연출스러움, 헤다가블러에 친절한 영애씨

'헤다 가블러'에서도 무대 후면에 의자를 놓고 배우들의 등퇴장을 그대로 노출시키는데 단순한 등퇴장의 개념보다는 헤다의 변화하는 심리와 사회 구조를 공동으로 체험해보는 서사극적 놀이구조의 형태다.
등퇴장이 없는 동일 구조에서 공동체로 살아가는 분위기 정도로 상상하면 될 것 같가.
각자 또는 순환되는 위치가 집, 거실, 밖, 사무실, 침대가 되는 식이다. 예를 들면, 한 극중 인물이 잠을 잔 뒤 등장하는 경우 그 인물은 그 자리의 무대 후면에 몸을 기댄 채 이어지는 장면으로 들어오는 설정이다.
대체적으로 이런 무대구조에서는 퇴장후는 인물로 분하지 않는데 헤다가블러에서는 퇴장후에도 극중인물의 내면의 변화가 연속되는 식이다. 크게 들어나지 않지만 말이다.
무대는 극중 인물들과 헤다가 고립돼 있는 분위기를 전면 박스형 구조로 설치해 현대적으로 감싸고 있다.
무대는 마치 한남동 더힐 아파트 외벽 구조가 관객 시선에서는 내벽처럼 설치된 듯한 분위기다.
LG아트센터의 프로시니엄 무대를 전인철식으로 활용하기 위해 적절히 구성된 구도(무대는 평면적인 응접실 형태의 의자와 피아노, 후면에는 디오니소스 초상화 액자, 50개 묶인 헬륨 풍선, 간단한 대소도구들과 무대 삼면을 둘러싼 배우들의 등퇴장용 의자들)가 있다.
무대는 헤다의 혼돈된 내면처럼 분화된 설치미술로 감각되며 연출은 등퇴장을 동일 공간 내에서 연속시켜 ‘헤다 가블러’의 폐쇄적 구조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다.
텍스트는 입센의 4막을 각색해 전 2막 구조처럼 느껴진다. (남편 조지 테스만(김정호 분)과 신혼여행 후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에일레트 뢰브보르와의 은밀한 관계—테스만 고모부의 죽음—뢰브로그 원고— 헤다의 내밀한 악마적 욕망—원고 소각- 뢰브보르의 죽음—헤다를 향한 브라크 판사의 욕망—헤다의 죽음).

전인철의 '헤다 가블러'는 죽음 이전까지 헤다의 고립된 심리적 변화에 집중하는 연출을 보이는데 이러한 변화성은 가정부를 통해 드러난다.
헤다의 가정부는 헤다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욕망과 자율성이 통제된 인물로 오로지 헤다를 위해 존재한다. 욕망이 신분에 의해 억압된 채 살아가는 가정부는 헤다의 심리적 현재성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일까. 가정부는 헤다의 심리를 관찰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간토르 연극에서 종종 나타나듯 연출이 무대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소품과 오브제를 건네주거나 무대 구조를 바꾸거나 극중 인물과 직접 대화하는 등)이 표현된다.
'헤다 가블러'에서 가정부(베르트, 조어진 분)는 헤다의 독백이나 변화되는 욕망, 내면의 심리, 뢰브보그와의 은밀한 대화, 살해욕망의 악녀로 변해가는 과정을 영상으로 비추고, 이를 무대 후면 화면에 그로테스크하게 투사하거나 손조명 등으로 극중인물 내면의 심리를 노출시킨다.
◇‘헤다가블러’의 심리적 내면과 욕망성, 그리고 죽음

서사극의 놀이극적 형태로 확장되는 헤다의 이미지는 TV로 익숙한 배우의 이미지를 섬세하게 장점화하기도 하고 큰 무대를 영상으로 활용하면서 헤다의 내면과 욕망,심리변화를 적절히 연출적으로 표면화한다.
그로테스크한 영상은 헤다의 변화성을 부각시키지만 원작 '헤다 가블러'의 고전적 서사는 다소 손상된 느낌도 준다.
마치 희곡 '헤다 가블러'를 연출적으로 핵심 정리한 느낌이다. 고전 희곡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EBS 인강처럼 요약된 느낌이랄까. 그러나 연출표현도 연기도 적절하다.
2막부터는 무대 대소도구의 위치가 바뀌고 마지막 장면은 알려진 대로 브라크 판사의 말처럼, 헤다가 원하는 그림대로 권총으로 죽지 않은 뢰브보그의 이야기와 죽음, 그리고 판사의 협박과 구속으로 결국 자살을 선택해 죽음으로 자유를 찾는 마지막 5분이 이영애의 '헤다 가블러' 핵심 장면이다.
총을 손에 쥔 채 총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 응접실 무대 구조는 약 1/3 상단이 열린다.
그 사이로 무대 하단공간은 안개 속 사바세계처럼 무대 구조가 공중으로 매달린 분위기를 준다. 헤다의 죽음과 극중 인물들이 마치 죽음으로 박제된 듯한 분위기로 결말이 맺어진다
전인철의 오브제 중 디오니소스 액자와 헬륨 풍선은 특히 눈에 띄는데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디오니소스 초상화 액자는 헤다의 내면을 상징한다.
포도의 신 디오니소스가 자유, 파괴 본능, 에로스적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가 인간을 광기에 빠뜨리듯 헤다도 억압된 욕망으로 타인을 자극하고 파멸시키는 데서 자유에 대한 쾌감을 느낀다면 그 욕망은 디오니소스 액자를 통해 자살로 이어지는 복선으로 해석된다. 2막부터 무대 구조가 바뀌며 초상화가 사라지는 설정(뒤집어 놓은 듯한 연출)도 이와 연결된다.
헬륨 풍선은 그 자유를 통제하려는 헤다이다. 풍선은 자살 이후에도 무대에 몇 번 위치 변화를 거치며 그대로 존재한다.
공연을 보며 마지막엔 이 헬륨 풍선이 무대 천장의 작은 원형 밖으로 날아가거나 무대에 크로테스크한 전경을 만들어 낼 것을 기대했는데 예상 외로 점잖게 끝났다.
◇와글와글 영애씨와 LG아트센터

국민 '대장금'에서 입센의 '헤다 가블러'로 32년 만에 연극무대 데뷔전을 치른 이영애의 '헤다 가블러'는 고전성보다는 전인철 연출스러움과 이영애스러움만 확인하게 되는 무대였다.
LG아트센터의 클래식한 분위기와 전인철의 현대적 배치 구도가 완충되지 못하는 느낌이다.

전인철의 작품은 더 편안한 공간에서 볼 때 감각적으로 살아난다. 32년 만에 무대에 선 이영애는 요즘 와글와글 대학로 통신에도 '헤다 가블러'로 요즘 종종 소환된다.
TV나 영화에서 산소 같은 여인으로 기억되지만 수많은 상을 휩쓴 배우답게 이번 연극에서도 헤다의 심리적인 불안과 내면을 아쉽지만 적절하게 드러냈다고 본다.
연출 역시 이영애의 연기 단점이 드러나지 않도록 영상과 함께 연출 구도를 정리해 무대 데뷔전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이영애의 연기 스타일에 무게감 있는 배우들(김정호/조지테스만, 지현준/브라크 판사, 백지원/ 테아 엘브스테드, 이승주/ 에일레트 뢰브보그, 이정미/줄리아나 테스만 등)을 배치한 점도 그녀의 연기를 부각시키면서 '헤다 가블러'의 고전적인 살결을 극중 인물들로 살려냈다.
아쉬운점은 연기(톤)의 앙상블이었고 헤다가블러의 섬세한 심리적 변화와 LG아트센터의 음향이다.
배우들은 각자의 톤, 색, 공명의 정도에 따라 무대 연기를 하다 보면 감정이 과잉되거나 날것 그대로 순화되며 표현된다.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엔 무대 구조나 방음 상태에 따라 생음이 중화되고 배우들의 톤 균형을 맞추는 연습을 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배우 전체가 와이어리스를 사용했기 때문에 단순히 볼륨 조절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각자의 소리 톤과 음색의 고저 밸런스를 섬세하게 조율해야 하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배우별로 볼륨 차이만 조정했고 전체 감정 밸런스는 위태로웠다.
이런 상황에서 배우의 감정이 기계에 흡수되지 않으면 하울링이 생기고 관객은 대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기계음만 듣게 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그만큼 연기의 밸런스가 아쉬웠다. 연극 무대에 익숙한 지현준, 김정호 등의 연기—특히 김정호의 감각적인 감정 표현이 2막 이후 헤다와의 대사에서 기술적 디테일로 인해 감정의 대비감이 불규칙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기계음을 아날로그 감정으로 순환시키는 게 기술이고 특히 국내에서 많은 전자기기를 판매해온 LG아트센터 아닌가.

김건표(연극평론가) / 대경대 남양주 캠퍼스 연기예술과(연극영화과) 교수. 국립극단이사,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이사, ‘연극평론’, ‘문학세계’ 편집위원과 ‘한국희곡’ 편집주간, ‘동시대 연극 읽기’, ‘한국연극의 승부사들’, ‘장면텍스트’, ‘말과 정치문화’ 등 다양한 전공 서적을 발간했으며 전방위적인 문화정책과 연극평론을 하고 있다.
스마트경제 복현명 기자 hmbok@dailysmar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