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시극단의 ‘유령’이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막을 올렸다(고선웅 작·연출, 2025.5.30.-6.22).‘퉁소소리’로 2025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작품상을 수상한 고선웅 연출의 창작극이다. 사진=서울시극단.

[스마트경제] #. 올해에도 '거침없이 연극리뷰'가 스마트경제를 통해 매주 금요일에 연극, 뮤지컬 분야 평론가들의 거침없는 연극리뷰 시즌3을 연재한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주간이며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권위자인 문학박사 김기란 평론가, 숭실대학교 교수 백로라 평론가, ‘한 줄도 좋다, 우리 희곡’의 저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교양학부 객원교수 정수진 평론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방위적인 연극평론을 하고 있는 ‘한국연극의 승부사들’, ‘동시대 연극 읽기’의 대경대 연기예술과(연극영화과) 교수 김건표 평론가가 매주 릴레이로 연재한다(편집자주).

 

◇고선웅의 창작극, ‘유령들’을 위한 위로와 애도

지난달 30일 서울시극단의 ‘유령’이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막을 올렸다(고선웅 작·연출, 2025.5.30.-6.22).

‘퉁소소리’로 2025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작품상을 수상한 고선웅 연출의 창작극이다.

이 작품은 한겨레신문의 기획 기사 ‘고스트 스토리(2018년, 한문영 기자)’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것으로 살아서도 죽어서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지워진, 무연고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주민등록증조차 없어서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 죽어서도 무연고자로 분류되어 오랜 기간 시체 안치실에 방치되어 있어야 했던 사람들, 그래서 마치 유령처럼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사람들을 위로하며 애도하는 연극이다.

 

◇사라지고 지워지는 존재, 유령, 무연고자, 그리고 배우들

이 연극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러한 ‘유령’들을 바라보는 고선웅의 독특한 시선과 이들을 위로하는 방식에 있다.

흔히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면서 ‘세상은 무대고 인간은 배우’라고 하는데, 이 연극에서는 바로 이러한 관점으로 무연고자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들의 존재 방식이 연극 배우와 매우 닮아있음을 보여준다. 배우 역시 무대 위에서 매번 새로운 캐릭터로 살아가지만 공연이 끝나면 흔적 없이 사라져야 한다는 점에서, 무연고자 ‘유령’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운명이기도 하다. 그러니 삶이 고달프고 죽음이 공허하게 생각되더라도 그리 서글퍼하거나 서러워하지 말자는 것이리라.

 

◇연극과 인생의 병치, 극중의 극과 즉흥극 형식의 활용

서울시극단의 ‘유령’은 연극과 인생을 병치시킨 의도 때문인지 실제 공연은 무겁고 진지하기보다는 거칠고 엉뚱한 즉흥극처럼 전개된다. 사진=서울시극단.

연극과 인생을 병치시킨 의도 때문인지 실제 공연은 무겁고 진지하기보다는 거칠고 엉뚱한 즉흥극처럼 전개된다.

‘극중의 극’ 형식으로 배우들이 현실과 허구적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배우 자신과 캐릭터를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들은 극적 세계에 몰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극적 상황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완성도 높은 미장센을 보여주었던 기존의 고선웅 연출 무대와 달리 극적 서사뿐 아니라 연극의 형식까지도 엉성하고 다듬어지지 않아서 마치 ‘날 것’ 그대로를 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공연 형식은 연출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것은 배우의 대사나 극적 상황을 통해 ‘연출의 부재’가 의도적으로 강조된다거나 무대 감독 역을 맡은 배우가 연출을 대신하여 상당히 비중 있는 역할을 담당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연극만큼은 연출의 미학적 개입을 드러내지 않는 무대, 무질서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는 무대, 그래서 배우와 캐릭터만 온전하게 존재하는 무대를 만들어보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로 이러한 점은 이 연극의 한계이자 치명적인 매력이 될 수 있다.

미적 완성도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겨주겠지만 배우와 캐릭터만 온전하게 살아있는 무대는 그것의 ‘부재’와 ‘사라짐’을 상당히 충격적인 방식으로 경험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학적, 상징적인 무대

이 작품은 세 개의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공연이 진행되는 무대, 분장실, 그리고 시체 안치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무대 뒤편의 벽면에는 메탈릭 실버 색채로 된 시신용 냉동고들이 여러 대 설치돼 있고 바닥 전체에 정방형의 큐브들이 촘촘하게 배치돼 있다.

그것은 마치 얼음 큐브, 유골함, 혹은 이름 없는 비석 등을 연상시키면서 무대 공간 전체를 죽음의 공간으로 의미화한다.

서울시극단의 ‘유령’의 무대 세트는 상당히 미학적이고도 상징적인데 유령들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작품의 마지막 장면과 함께 깊은 인상을 남긴다. 사진=서울시극단.
서울시극단의 ‘유령’의 무대 세트는 상당히 미학적이고도 상징적인데 유령들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작품의 마지막 장면과 함께 깊은 인상을 남긴다. 사진=서울시극단.

이러한 무대 세트는 상당히 미학적이고도 상징적인데 유령들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작품의 마지막 장면과 함께 깊은 인상을 남긴다.

바닥에 설치된 큐브들의 경우 시각적으로는 아름다웠지만 너무 촘촘하게 배치돼 배우들의 연기 공간이 제한될 것으로 우려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큐브들 사이를 위태롭게 뛰어다니거나 위로 올라서는 등 다양한 신체 움직임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극 전체에 리듬과 역동성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공간을 유령들이 바퀴 달린 신발을 신고 미끄러지듯이 달리면서 ‘발 없는 귀신’의 이미지를 연상시킨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그러한 신발에 익숙하지 않아서 비틀거리는 중년 배우들(신현종, 이지하)의 동작은 배우들이 실제로 쩔쩔매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현실과 극적 세계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캐릭터가 아닌 배우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환기시키는 흥미로운 장면 연출이라 할 수 있다.

 

◇무연고자들의 서사, 배우와 캐릭터가 공존하는 무대

막이 오르면 배우 이지하가 등장해 “저는 이번 생에서 배씨, 정씨, 그리고 다시 배씹니다.”라고 자신의 배역을 소개하고 곧이어 배명순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배씨는 가정 폭력의 피해자다. 그녀는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정순임으로 신분을 감추고 살아가다가 병에 걸려서 찜질방에서 숨을 거둔다.

그러나 무연고자로 처리돼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시체 안치소에 배치되고 그곳에서 유사한 처지에 있는 다른 유령들과 만나 그들의 사연을 듣는다.

이러한 무연고자들의 사연이 극의 중심 서사에 해당하지만 분장사, 작가, 무대 감독, 관객 등과 같은 연극 밖의 인물들이 공연 도중에 개입하면서 연극이 중단되기 일쑤다.

극의 후반으로 갈수록 그 중단의 빈도가 높아지면서 결국에는 현실과 극적 세계가 뒤섞여버리는 상황이 연출된다.

등장인물들이 서로 캐릭터(배역)가 아닌 배우의 실명을 부른다거나 객석에 관객처럼 앉아있던 배우가 무대로 걸어나가 또 다른 배역을 맡아 연기한다든가 혹은 작가와 연출이 무대 감독을 통해 무대에 디렉션을 전달하는 상황 등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로써 현실과 극적인 세계뿐 아니라 무대와 객석, 극장의 안과 밖의 세계가 뒤섞이는 상황이 전개된다.

 

◇대단원, ‘유령’들을 위로하고 애도하는 제의

서울시극단의 ‘유령’ 결말 부분에 이르면 배우가 피우던 담뱃불이 막에 옮겨붙는다. 이때 시체 안치소에서 무연고자의 시체 세 구가 꺼내져 무대 앞에 배치되고 안녕사(安寧師)가 등장해 장례를 주관한다. 그에 따라 유령들이 자신의 시체와 작별 인사를 하면 무대 감독이 시체에 불을 붙인다. 사진=서울시극단.
서울시극단의 ‘유령’ 결말 부분에 이르면 배우가 피우던 담뱃불이 막에 옮겨붙는다. 이때 시체 안치소에서 무연고자의 시체 세 구가 꺼내져 무대 앞에 배치되고 안녕사(安寧師)가 등장해 장례를 주관한다. 그에 따라 유령들이 자신의 시체와 작별 인사를 하면 무대 감독이 시체에 불을 붙인다. 사진=서울시극단.

극의 결말 부분에 이르면 배우가 피우던 담뱃불이 막에 옮겨붙는다.

이때 시체 안치소에서 무연고자의 시체 세 구가 꺼내져 무대 앞에 배치되고 안녕사(安寧師)가 등장해 장례를 주관한다. 그에 따라 유령들이 자신의 시체와 작별 인사를 하면 무대 감독이 시체에 불을 붙인다.

이후 유령들이 벗어놓는 옷이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무대는 붉은색으로 물들며 막이 내린다.

무연고자의 시체, 유령이라는 캐릭터, 무대와 극장이 모두 불에 타서 사라지는 이 마지막 장면은 연출의 의도가 가장 미학적으로 표현된 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그것은 존재와 부재 사이를 떠도는 ‘유령’들을 위로하고 애도하며 저승으로 편안하게 보내주는 일종의 ‘제의’이자 막이 내리면 사라져버리는 연극과 배우(캐릭터)의 숙명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배우의 존재와 존재론적 의미가 안겨주는 묘한 감동

서울시극단의 ‘유령’이 특징적인 것은 극적 서사와 장면 구성이 짜증을 유발할 정도로 산만하고 거칠게 구성됐음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묘한 감동을 준다는 데 있다. 사진=서울시극단.
서울시극단의 ‘유령’이 특징적인 것은 극적 서사와 장면 구성이 짜증을 유발할 정도로 산만하고 거칠게 구성됐음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묘한 감동을 준다는 데 있다. 사진=서울시극단.

이 연극이 특징적인 것은 극적 서사와 장면 구성이 짜증을 유발할 정도로 산만하고 거칠게 구성됐음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묘한 감동을 준다는 데 있다.

무연고자 유령들의 장례를 치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실제로 ‘울컥’하고 눈물이 나는 것은 가장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몰입을 방해하는 그 많은 극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존재와 그 존재론적 의미 자체가 진정으로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이지하 배우가 자신을 본떠서 만든 시체와 작별하면서 “배명순, 정순임, 다시 배명순, 다시 이지하! 안녕”이라고 말하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슬픔과 공허가 밀려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순간 관객들은 깨닫게 된다. 배우들은 매번 이렇게 막이 내릴 때마다 무대에서 자신(캐릭터)의 사라짐과 죽음을 경험하겠구나.

그것이 배우의 숙명임을 관객들은 그제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배우들 역시 이러한 ‘제의적 액션’을 통해 그동안 추상적, 관념적으로만 생각해 왔던 캐릭터와의 작별 과정을 무대에서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고선웅이 왜 이 연극에서 연출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배우들과 캐릭터가 공존하는 ‘날 것 그대로’의 무대를 보여주고자 하였는지 짐작하게 만든다.

 

◇고선웅 연극의 힘, 인간을 향한 애정과 연민

무연고자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적 관심에서 출발한 작품이지만 작품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 연극은 무연고자들보다는 배우의 존재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서울시극단의 ‘유령’은 무연고자들의 서사가 너무도 슬프고 무겁기에 연극성이 전경화되는 극중의 극 형식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서울시극단.
서울시극단의 ‘유령’은 무연고자들의 서사가 너무도 슬프고 무겁기에 연극성이 전경화되는 극중의 극 형식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서울시극단.

이 작품은 무연고자들의 서사가 너무도 슬프고 무겁기에 연극성이 전경화되는 극중의 극 형식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무연고자들의 사연보다는 연극과 배우의 의미가 더 비중 있게 전달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무연고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르포나 다큐멘터리를 능가하는 새로운 서사와 연극적 형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고선웅의 ‘유령’에서 여전히 인간에 대한 강한 애정과 연민이 발견된다는 것은 의미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무연고자들의 기사를 보고 움직였던 마음은 배우와 연극을 향하는 그의 애정 어린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고선웅의 연극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어쩌면 완성도 높은 미장센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달프고 삭막한 시대, 그의 연극을 찾게 되는 이유다.

 

 

백로라(연극평론가)/ 숭실대 교수, <연극평론>, <한국연극> 편집위원

 

 

 

 

 

 

스마트경제 복현명 기자 hmbok@dailysmart.co.kr

저작권자 © 스마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