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경제] #. '거침없이 연극리뷰'가 연극, 뮤지컬, 공연예술 분야 신진 비평가를 발굴하고 등단의 기회를 넓히려는 취지로 신진비평가 리뷰를 게재한다.
이번 신진비평은 지난번 한국연극평론가협회와 두산아트센터의 2025 봄 비평 워크숍을 통해 최종 제출된 비평문 중 은유 속 길을 잃은 은빛 세계 ‘삶의 모순마저 모호해진 연극’, ‘은의 밤’으로 신진 비평에 등단한 이지영씨의 고서빈 연출 ‘배우, 북극곰 그리고 물고기들’ 리뷰를 게재한다.
'거침없이 연극리뷰' 편집주간을 맡고 있는 연극평론가 김건표 교수(대경대)는 “앞으로 '거침없이 연극리뷰'를 통해 신진비평가 등단, 건강한 비평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 유행처럼 기후위기나 환경오염과 관련된 연극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 중 인식론적 균열로 사유의 확장을 유도하는 작품도 있었던 반면 인식개선의 의도, 교훈적 메시지가 지나치게 강조돼 연극적 재미를 상실했다는 평가를 듣는 작품도 상당수 있었으며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아포칼립스에 대한 상상력 부재, 설득력이 떨어지는 비약적인 가정으로 관객과 평단의 외면을 받은 작품도 더러 있었다.
이렇듯 접근하기 녹록지 않은 환경오염과 기후위기를 소재로 모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낸 '배우, 북극곰 그리고 물고기들'(2025.08.07.~2025.08.17/나온씨어터/ 프로젝트 BB 제작)은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심리적 거리를 극의 초반과 중반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영리하게 끌어당긴다.
‘이번 여름 정말 너무 더우시죠? 다가올 겨울은 혹독하게 추울 겁니다. 이러다 정말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북극이 더 녹으면 얼어붙은 고대 바이러스들이 나타난다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 또한 진화를 거치겠죠? 그건 재앙일까요? 아름다운 진화일까요?’ 전례 없는 폭염과 코로나19를 겪어 온 관객들에게 이렇듯 피부로 와 닿는 시의적절한 질문을 한 뒤 극 중 세 배우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러닝타임 딱 그만큼만이라도 기후위기를 코앞에 봉착한 ‘자기 문제’처럼 ‘함께 감각’해 달라고 요청한다.
◇다양한 감각적 층위로 비집고 들어오는 기후위기
고서빈 작가·연출과 프로듀서이자 배우인 박소영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프로젝트 BB(Break the Boundary)는 올해로 창단 2주년을 맞았으며 기존의 관습을 깨는 포스트 드라마 형식, 다큐멘터리 연극을 지향하고 있는 창작집단이다.

연극 '배우, 북극곰 그리고 물고기들' 역시 세 가지 플롯이 병렬적으로 파편화돼 나열되다 결국은 순환되는 독특한 형식과 구조를 취하고 있다.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무대였다. 환경을 소재로 하고 있는 연극답게 무대세트도 최소화 했지만 비동시적 사건과 공간을 구분하는 조명과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효과적으로 시각화 됐다.
녹아내리는 빙하를 연상시키는 흰색 원형의 무대는 장면에 따라 세 덩어리로 분리됐고 공연 말미에 보인 무대의 단면은 우리가 생산해 내는 플라스틱으로 꽉 차 있어 경각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에피소드 중 북극곰들이 생존을 위해 헤엄쳐 도착하는 대안적 공간 역시 이 원형의 무대이다.
특히 배우들이 극장 안 밖으로 쌓인 플라스틱을 끌고 와 무대를 뒤덮는 동시에 쓰레기 비가 내리게 하는 장면 연출은 실제 우리가 북극곰들의 마지막 희망을 쓰레기 산으로 뒤덮고 있는 현실과 오버랩 되며 수행적 감각을 창출한다.
재활용 제품으로 만든 북극곰 가면, 장난감 자동차에 탄 오리 등 귀여운 오브제들을 틈틈이 사용해 주제가 전하는 묵직함에 관객이 억눌리지 않게 해주는 연출적 센스 역시 돋보였다.
조명, 음향, 무대장치 등 다른 무대적 요소 또한 등장인물들의 내러티브를 따라가기 보다는 기후 위기 속 인간과 다양한 개체들의 불안과 두려움의 정서를 다양한 층위로 환기하고 드러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단순한 무대 장치의 전환으로 관객을 다른 위치로 호명하는 시도 역시 인상적이었는데 객석과 무대가 분리되는 실루엣 커튼이 쳐지면 그 밖에서 고통 받는 북극곰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폭력적 상황에서 거리를 두는 방관자가 되었고 향유고래를 연상시키는 빛과 소리가 극장 전체를 은은하게 유영하면 관객들은 단박에 향유고래의 고통을 유희하고 있는 수족관 속 관람객이 됐다.
◇부유하는 세 이야기

연극 '배우, 북극곰 그리고 물고기들'은 크게 세 플롯으로 진행된다.
그 중 배우들의 생각과 일상을 녹여내는 에피소드에서는 이들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 중에 저탄소 배출 미션을 위해 했던 실천과 우여곡절을 공유하며 관객의 공감과 창작진의 진정성을 확보한다.
하지만 참여 배우들의 기후와 관련된 문제의식이 ‘공연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만 작동했다는 사실의 지나친 강조는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동했다.
북극곰, 수족관 플롯은 기후 변화로 인해 예견되는 혹은 현재도 어디선가는 진행되고 있는 시나리오들이었는데 창작진이 리서치를 통해 찾아낸 재앙적 현실을 허구적 상상력과 결합해 드라마 형식으로 풀어냈다.
무겁지 않은 접근과 북극곰 가면 등의 오브제 활용이 유쾌했지만 서식지를 잃은 북극곰의 치열한 생존에 대한 열망과 동족 살해의 비극적 현상을 지나치게 인간중심적 시선으로 풀어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수족관 이야기에서 플라스틱을 삼킨 후 구조된 향유고래와 플라스틱을 과도하게 섭취해 유산한 아야와의 동일시는 다소 작위적이었으며 비인간을 다루면서도 결국 인간적 화해의 메시지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아이러니를 발생시켰다.
극에서 노출된 가장 큰 문제점은 첫 번째 에피소드가 다른 두 플롯과의 느슨한 연결고리나 매개적 역할을 하지 못해 결국 각각의 플롯들이 무대 위 세 빙하 조각처럼 부유하며 떠 다녔고 창작주체의 발화가 가지는 힘과 있을 법한 허구로써의 두 이야기가 조화롭게 관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왜 모크인가?

'배우, 북극곰 그리고 물고기들'은 진실과 허구가 적절히 섞여 있는 모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표방하고 있지만 공연을 보고나서 과연 이 형식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우선 배우들의 자전적 발화에서는 모크(mock, 놀리다)적이거나 허구적 요소를 찾기 어려워 오히려 메타 연극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고 나머지 두 플롯 역시 서사의 빈약성으로 인해 허구를 리얼리티 형식으로 극대화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모크 다큐멘터리에서 관객들은 일어날 수 있는 일과 실제 일어난 일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럴 경우 관객들은 픽션의 리얼리즘보다 훨씬 더 강화된 리얼리즘을 보길 원한다.

하지만 '배우, 북극곰 그리고 물고기들'에서는 허구와 진실 사이 아슬아슬한 간극이 만들어지지 않다보니 관객들이 모크적인 요소를 능동적으로 찾아가기 힘들었고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향유의 감각을 바꿀 수 없다면 왜 이 형식을 가져왔을까 하는 의문이 재차 들었다.
또 배우들이 중간 중간 던지는 질문들도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으로 이어지지 않고 다음 진행을 위한 연결로만 기능하는데 이왕 관객에게 질문을 던졌으면 관객으로만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발생시키고 관객을 능동적 참여자로 재 위치시켜 생태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모색도 필요해 보였다.
'배우, 북극곰 그리고 물고기들'은 시의적절한 질문들과 창작진의 진정성이 엿보이는 과정공유로 관객의 몰입을 영리하게 유도했고 친환경적이며 효율적인 무대요소들로 거시적이며 복합적인 난제인 기후위기를 무겁지 않고 유쾌하게 풀어냈다.
하지만 우리 삶과 예술, 사실과 허구 사이의 거리를 위태롭게 조절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발산하는 모크라는 형식이 이 작품을 관통하는 적절한 방식이었는지에 대한 의문과 세 에피소드 모두를 유기적인 한 덩어리로 묶어내는 연결성과 관련해서는 창작진의 고민이 더 필요해 보인다.

이지영(현 동국대학교 연극학과 강사)/ 신진평론가 및 창작자. 일회성의 예술인 연극의 날선 파동을 다각적으로 잘 붙잡아 두기 위한 글쓰기를 지향하고 있다. 젠더, 청년, 돌봄 노동, 소수자 담론을 다루고 있는 연극 작품들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연극 속 소수자들을 재현해 내는 방식에도 관심이 많다.
스마트경제 복현명 기자 hmbok@dailysmar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