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경제] # 스마트경제가 2025년 11월부터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기예술과 교수의 '톡(Tok)! 쏘는 톡(Talk) 터뷰(토크+인터뷰의 줄임말)'를 연재한다.
'톡 쏘는 톡 터뷰'는 전국을 누비며 만나는 다양한 분들의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본 후 지하철과 버스로 이동하며 SNS에 게재한 짧은 글들과 인터뷰, 공연을 본 후 평론가의 진단과 생각들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쇼츠 인터뷰를 연재한다.
김건표 교수는 연극평론가로 한국연극의 승부사들, 동시대 연극읽기, 장면연기텍스트, 말과 정치문화, 인터뷰 서적으로는 인터뷰의 기술, 김건표가 만난사람들 행복의 기술(記述) 등이 있으며 사회각계 각층의 인사와 전문가 약 400명을 인터뷰 해왔다(인터뷰=김건표 교수, 편집과 정리=복현명 스마트경제 경제사회부 부장(대학교육부 겸직)).

2인극(제25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조직위원장 김진만) ‘하지의 밤’(작 오가와 미레이, 극단 비상, 김정근 연출, 예술공간 혜화)은 일본 희곡이다.
한때 ‘오겡끼데스까(お元気ですか)’가 인사법처럼 유행했던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Love Letter, 1995)’를 떠올리게 하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와 결은 다르지만 사랑의 마음을 열어본 적 없는 여자 로즈마리(임영란 분)와 그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남자 엘더(고훈목 분)의 이야기다.
평생 로즈마리를 기다려온 남자, 그리고 죽음의 순간 약초원을 찾아 엘더를 만나게 되면서 연극은 시작된다.
무대에는 탁자와 약초차를 끓여내는 다기(茶器) 정도만 놓여 있으며 공간은 프로젝션 맵핑으로 라벤더 향이 퍼질 것 같은 분위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이 다시 만나면서 말할 수 없었던 과거의 이야기와 고백, 상처들이 오직 두 사람의 대화로 채워진다.
잊을 수 없었던 기억을 붙잡고 볼 수 없었던 상실과 외로움으로 고통받으며 살아온 두 사람은 재회의 시간을 통해 구멍 나고 삐져나온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해 나간다.
◇고백 대신 ‘있어 주는’ 사랑 '하지의 밤'
결국 사랑은 고백보다도 그 아픈 마음을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두 배우가 채워내는 시간이 연기로 쌓여가는 분위기가 라벤더 향 같다.
2인극에서 대사(언어)의 비중이 큰 만큼 '하지의 밤'은 때로는 침묵과 사이를 통해 과거를 파고들기도 하고 시선만으로도 감정을 눈치챌 정도의 밀도를 형성한다.
때로는 매서운 한마디도 차갑게 쏟아붙이는 낯선 말투도 사랑이며 그 사랑을 약초의 향처럼 스며들게 만드는 공연이다.

제목 ‘하지’의 뜻처럼 밤이 가장 짧은 밤 약 58분 정도의 시간 안에 두 남녀가 수십 년 동안 꺼내놓지 못한 사랑의 감각을 꺼내 집중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국내에 잘 알려진 '아버지와 살면'의 작가 이노우에 히사시(井上ひさし, 1934–2010)의 제자인 오가와 미레이의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공연을 보러 일본 연극 관계자들과 이노우에 히사시의 미망인(이노우에 유리) 등 10명이 객석에 있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일본 현대소설의 거장 ‘이노우에 히사시’와 ‘오가와 미레이’의 부친은 친구 사이였고 작가 사후 이후 오가와 미레이는 스승의 작품과 판권, 희곡들을 관리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써오고 있다.
국내에도 몇 작품이 소개됐는데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인큐베이팅 공연으로 소개된 '콩나물의 노래'(2015)는 배경을 한국식으로 바꿔 극단 하랑에 의해 공연됐고 김관 연출로 제39회 서울연극제에 출품된 '깊게 자자, 죽음의 문턱까지'(2018, 유니플렉스 2관) 역시 오가와 미레이의 작품이다.
전주시립극단에서는 '줄리엣들'(2017)이 무대화됐으며 오가와 미레이의 희곡 '콩나물의 노래'는 도서출판 예니에서 출간됐고 '깊게 자자, 죽음의 문턱까지' 역시 번역으로 소개돼 있다
특이한 점은 작가의 희곡을 국내에 소개하는 번역가가 박순주씨라는 사실인데 이번 '하지의 밤' 역시 국내 소개까지 4년 정도가 걸렸다.
◇한국초연 4년의 밤을 기다린, 희곡작가와 번역 작가의 '하지의 밤'
공연을 본 뒤 걸어가면서 궁금한 것을 물어봤고 신계숙 쉐프가 직접 운영하는 ‘계향각’ 중국집에서 약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신계숙 쉐프를 보고 “ 요즘 계향각에서 볼수 없으시던데요?” 묻자 “ 대학로 계향각으로 매일 출근하는데요(웃음)” 하며 인터뷰 자리를 안내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박 작가는 일본어 통역으로 습관이 돼서인지 종이노트를 꺼내 들고 말했다.
“코로나 이전에 2인극 페스티발에 출품하려고 제가 작가에게 4년 전에 의뢰해서 개발된 희곡이에요. 한국 공연이 잘 안 돼 2020년도에 김정근 연출님께 공연을 의뢰했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져서 못하게 되다가 이번에 2인극 페스티발에서 초연을 하게 된 거죠.”
옆에 앉아 있던 오가와 미레이 작가가 거들었다. 물론 통역을 통해서다.
“뭐라고 할까요. 소재는 간단할 수 있지만 어렵게 풀어내고 싶지도 않았어요. 로즈마리가 남자(엘더)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지만 남자는 그 말을 다 받아내죠. 사랑한다는 고백보다 저는 엘더 같은 ‘지키는 사랑’을 말하고 싶었어요.”
박순주 작가가 끼어들었다.
“로즈마리는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존재죠. 그 마음을 대신 받아내는 것도 엘더예요. 사랑이 서투른 거죠. 결국 남자를 통해 사랑을 알게 되는데 그게 고백이 아니고… 뭐라고 할까요. 그냥 ‘있어주는 것’도 사랑이잖아요? 그런 사랑. 엘더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가면서 사랑을 알게 된다고 해야 할까요.”

박순주씨는 도쿄에서 거주하면서 일본 희곡을 발굴하고 한일 공연 프로듀서까지 하고 있는 전문 번역가이다.
“번역가에 작가를 붙이는 경우는 없잖아요? 저는 번역 작가이고 슈퍼바이저예요"
무슨 말인가 싶어 바라봤다. “번역만 하는 게 아니고 공연 전 과정에 제작자로 참여해서 일본 희곡을 국내에 소개하기도 하고 공연화가 될 수 있는 역할과 창작을 겸한다고 할까요.”
어떻게 불리기를 바라냐고 묻자“물론 희곡 작가죠. 박순주씨는 지난해 331페이지로 담은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 (정은문고)를 출간했다.
‘진보초’(神保町)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일본의 책 마을이다. 책 마을 답사기라고 할까.
진보초는 메이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도쿄대학이 진보초에 생기면서 대학가가 형성됐고 1877년에 최초의 서점이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책방 거리가 형성됐다.
일본 진보초는 한국의 청계천,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처럼 고서와 희귀본이 공존하는 책의 거리로 고서(古書) 마을 이야기부터 책 문화의 내력을 따라가는 순례기가 책에 방대하게 담겨 있다.
“이번 공연을 위해서 수 차례 수정을 거쳤어요. 제가 작가님을 귀여운 겁박 아닌 겁박을… (웃음) 잘 참아주셨고 작품이 좋아서 오늘 공연도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작가님하고 방을 같이 쓰는데 공연을 앞두고 잠을 못 주무세요. 걱정이 되신다고요. (웃음) 작가님은 원고에 줄 긋고 수정 요구하는 거 잘 안 통하는데, 이번엔 한국 정서에 맞게 희곡이 잘 나온 것 같아요. 제가 슈퍼바이저잖아요.”

오가와 미레이 작가에게 희곡을 쓸 때 힘든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작가에게는 계속 수정하고 다시 쓰고 그러면서 희곡을 완성해 가는 시간이 고통스럽죠. '하지의 밤' 한국 초연도 10년 정도가 걸렸으니 그동안 많이 수정하고 고치면서 한국 공연을 기다려왔어요”
공연에 만족하는지 물었다. “만족해요. 배우들도 정말 잘해 주셨고 관객분들도 만족하시는 걸 보니 제가 '하지의 밤'을 잘 썼구나, 생각이 들죠.”

박순주씨에게 앞으로 직함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물었다.
“희곡 작가로 불러주세요.”공연을 본 뒤 작가, 번역가와 중국집에서 나눈 30분간의 밤은 '하지의 밤' 같았다. 5일까지 예술공간 혜화에서 공연됐다.
영화 '러브레터'를 다시 봐냐 하나....“오겡끼데스까”

김건표(연극평론가/ 대경대학교 연기예술과 교수)
스마트경제 복현명 기자 hmbok@dailysm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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